정신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연립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이후 정신 병상을 없애는 대신 지역 사회로 돌아온 정신 질환자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미국의 경우 주립 정신 병원의 병상 수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그대신 병원의 체계를 지역 사회로 옮겨왔고,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지역 사회 치료 모델(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 ACT)’을 시행했다. ACT는 의료, 간호, 심리, 복지, 작업 치료 등 다학제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개별화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약물 관리부터 주거 지원, 취업 연계, 위기 개입, 가족 지원에 이르기까지, ACT는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돼준다. 증상 및 기능 장애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던 중증 정신 질환자들이 ACT를 이용한 이후에는 증상을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취업 연계 및 주거 지원을 통해 입원하지 않고도 지역 사회에서의 삶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좋지 않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정신 질환자에 대한 지원 체계를 구축해 왔지만, 여전히 장기 입원을 통해 정신 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우리나라 정신과 입원 병상은 꾸준히 증가했고, 입원 정신 질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18년 OECD 국가의 인구 1000명당 정신 병상 수는 우리나라가 1.26개로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많다. 미국이 0.25, 영국이 0.37, 캐나다가 0.34인 것과 비교하여 세 배 수준이다. 평균 입원 기간은 우리나라가 176.5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영국이 35.2일, 캐나다가 21.2일, 호주가 24.1일인 것과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높다.
[4] 2019년 기준 한 달 내 재입원 비율은 27.4퍼센트로 OECD 회원국 평균 재입원률 12.0퍼센트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5] 정신 질환자의 대표적 입소 시설인 정신 요양 시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2020년 기준 전체 8828명의 입소자중 48.2퍼센트인 4257명이 10년 이상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6] 이러한 수치들은 한국의 정신 장애인들이 여전히 병원과 시설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입원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회복해 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지원을 하는 서구와 대조적이다.
집에서 살 권리
정신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살아갈 수 있는 주거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물리적인 집만 제공하는 것만으로 정신 장애인의 주거권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 1999년 미국의 옴스테드(Olmstead) 판결은 정신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살 권리’를 쟁취한 사례다. 두 명의 여성 당사자인 로이스 커티스(Lois Curtis)와 일레인 윌슨(Elaine Wilson) 은 주립 정신 병원에 12번 이상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담당 주치의는 적절한 지원만 있으면 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치료 후에 집으로 돌아가도 지역 사회 기반 서비스가 부재했기 때문에 입원을 반복해야만 했다. 결국 두 여성은 조지아 주가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명시된 ‘지역 사회 통합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주州정부에 지역 사회에서 충분한 치료와 지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조지아주 정신 건강부가 커티스와 윌슨이 주립 정신 병원을 떠날 수 있도록 지역 사회에서 합리적 편의 제공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정신 장애에 관한 정책 방향이 지역 사회 서비스 제공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령 13217’을 통해 모든 주에서 옴스테드 판결에 준한 지역 사회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특히 지방 정부는 정신 장애인에게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고, 응급・임시・영구 거주 서비스와 24시간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주거 지원의 방향은 ‘단계적 주거 지원’에서 ‘주거 우선(Housing First)’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다. 주거 우선 정책은 1992년 뉴욕의 민간단체인 ‘집으로의 길(Pathways to Housing)’에서 주거 권리 운동으로 시작하였으며, 그 효과성을 인정받으며 미국을 넘어 다양한 국가에서 주거 지원 모델로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접근은 주거가 제공되기 전에 정신 건강, 음주, 고용 등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따라 24시간 보호를 받는 주거 시설에서 독립 주거로 이동하는 식의 단계를 거친다. 하지만 이는 ‘주거’를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의 주거 형태에서 적응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다시 적응해야 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주거 우선 정책은 당사자에게 맞는 주거를 먼저 선택하고, 그 주거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말 그대로 ‘주거’ 제공이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주거가 먼저 제공되고 여기에 지원 서비스가 결합할 때 안정적인 주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는 당사자가 정신 건강이나 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2010년 주거 우선 정책이 시행된 뒤 미국이나 유럽 전역에서는 주거 불안정이 효과적으로 개선되는 성과가 나타났다. 주거 우선 정책의 중요한 원칙은 주거 선택권과 개별화된 지원이다. 한 건물에 거주를 하더라도 각자의 욕구와 상황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식사를 준비할 때 스스로의 힘으로 음식을 할 수 있다면 전문가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장을 보거나 보조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 훈련과 지원이 제공되며,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없는 경우 도시락 서비스가 연계된다. 시설에서 정해진 시간에 일괄적인 급식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별화된 지원이 가능하다.
한국의 정신 장애인에게는 실제적인 주거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선 장기 입원 정신 질환자가 지역 사회로 나와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 장애인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공동생활 가정은 전국 시군구 중 75개 지역, 즉 32.8퍼센트에만 설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154개 지역에는 단 한 개도 없다. 2018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등록 정신 장애인 중에도 주거가 불안정한 경우가 12.3퍼센트로 이들은 적절한 주거가 지원되지 않을 경우,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주거 취약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 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도 정신 질환자는 그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 집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활동 지원 서비스 또한 정신 장애인은 대상 기준에 포함되기 어렵다. 2020년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정신 장애인이 자가를 소유한 경우는 32.8퍼센트로, 전체 장애 평균 58.2퍼센트보다 낮다. 모든 장애 유형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전월세로 거주하는 경우 보증금은 평균 2856만 원으로, 전체 장애인 중에서 가장 낮은 금액이다.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주거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정신 장애인은 사회 속에서 연립하기 어렵다.
일할 수 있는 권리
인간에게 노동은 중요하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한다. 이는 곧 생존권과도 연결된다. 노동권은 노동의 능력과 의욕을 지닌 사람이 사회적으로 노동할 기회와 그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노동권은 성별, 나이, 고용 형태,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진다. 그러나 정신 장애인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019년 경제 활동 실태 조사에 의하면 정신 장애인의 고용률은 15개 장애 유형 중 가장 낮은 11.6퍼센트로, 전체 장애인 고용률인 34.9퍼센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또한 정신 장애인의 비정규직 비율은 77.9퍼센트로, 모든 장애 유형 중 가장 높다. 정신 장애인 재활 시설에 고용된 정신 장애인의 임금은 평균 40만 3천 원으로 여타 장애인 근로 사업장의 평균 임금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신 장애인이 취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사회적 편견일 것이다. 정신 질환자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용주는 정신 장애인을 고용하기 꺼린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정신 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따르면, ‘내가 고용주라면 정신 질환자는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가 3.09점으로, ‘우리 가족이 정신 질환을 앓았던 사람과 결혼하겠다면 반대하겠다(3.62점)’와 ‘정신 질환자에게 우리 집 방을 세줄 수 없다(3.28점)’는 응답 다음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7] 실제로 채용 과정에서 정신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한다.
A 씨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우수한 성적으로 필기에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정신 장애를 이유로 최종 탈락하였다. A 씨는 양극성 정동 장애로 2012년 정신 장애 3급으로 판정받은 등록 장애인이다. 판정 이후에도 학원 강사, 건설 회사 측량 지원 등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일을 꾸준히 해왔다. A씨는 2020년 지방 공무원 9급 공개 채용에서 장애인 전형으로 지원했다. 1차 필기는 무난히 합격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면접 위원들로부터 직무 관련 질문이 아닌 정신 장애와 관련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고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현재 A씨는 국가를 상대로
법적 소송 중에 있다.
[8]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 제1호는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 배제, 분리, 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를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2020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신임 검사를 채용할 때 정신 질환 치료 여부까지 묻는 것은 과도한 인권 침해라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법무부 및 검찰은 검사를 임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서류를 요구하는데, 그 중 ‘정신과 진료 경험 여부’를 질문하는 서류인 신원 진술서가 있다. 사실 선발 과정에서 정신과적 병력을 묻는 것은 검찰만이 아니다. 법원에서 법관을 선발할 때도 정신과적 병력에 대해 기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검찰의 신원 진술서는 질문의 정도가 구체적이다. 법관 임용 서류와 달리 검사 임용 서류에서는 정신 건강상 이유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묻고 ‘예’, ‘아니오’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의료 기관의 진료나 상담은 받지 않았지만 학업이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정신 질환 등 정신 건강상 이상을 경험한 사실이 있습니까?’라고도 묻는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신원 진술서에 정신 질환 및 정신 건강 관련 문항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공무원 신원 조사 항목에 건강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도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채용 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정신 질환과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심각한 노동권 침해다.
[9]
서구에서는 이러한 차별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것을 넘어 장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까지 제도화하고 있다. 즉,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도 직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 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을 권고한다. 가령 영국에서는 2010년 평등법에서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였다. 특히 정신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 대한 직장에서의 합리적 조정 권고안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10]
근무 시간 또는 패턴
- 근무 시간/종료 시간 혹은 교대 패턴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한다.
- 진료 예약 시 유급 혹은 무급 휴가 사용을 허용한다.
- 업무 복귀 단계에서 임시적인 파트타임 근무를 허용한다.
- 동일한 시간이더라도 더 짧고 더 자주 쉬도록 한다.
- 연차 휴가를 연중 일정하게 사용하도록 한다.
물리적 환경
- 소음을 최소화한다. (개인 공간이나 칸막이 제공, 전화 음량 줄이기)
- 주 업무 공간과 떨어진 조용한 휴식 공간 제공한다.
- 예약된 주차 공간을 제공한다.
- 개인 공간을 추가 허용한다.
- 업무 공간을 이동한다.
업무 부담 관련 지원
- 지도 감독의 빈도를 늘린다.
-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지원한다.
- 특정 작업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 업무를 나누는 것을 고려한다.
외부의 지원
- 업무 코칭을 제공한다.
- 친구나 멘토를 제공한다.
- 동료들 간의 어려움이 있을 때 중재를 제공한다.
한국도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11조(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통해 교육, 고용, 문화 등의 분야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규정했다. 물리적 장벽으로 인해 사회 참여에 제약을 경험하는 신체장애인의 경우, 계단과 문턱 등을 없애고 엘리베이터 혹은 경사로를 설치하는 방식을 통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혹은 시각 장애인의 경우 촉각을 이용하거나, 오디오 신호를 활용한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에도 부득이하게 시설에 머물러 있는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에는 활동 지원 서비스, 동료 지원 서비스, 장애인 콜택시 등의 다양한 서비스가 포함된다.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통합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다. 하지만 정신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은 아직 포함돼 있지 않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국가들도 있다. 이탈리아는 ‘정신 병원이 없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정신 보건 개혁의 선구자인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자리아(Franco Basaglia)는 정신 장애인의 존엄성과 시민권을 복원하기 위해 정신 병원을 폐쇄하고 그들을 지역 사회에 사는 시민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자리아는 이탈리아 북부 고리치아 지역의 정신 병원 원장으로 임명된 후 감옥과 다를 바 없는 병원 내부의 상황을 보고 정신 병원 개혁의 선두에 섰다. 그 결과 1978년, 바자리아법이라고도 불리는 ‘법률 180(정신보건개혁법)’이 통과됐다. 이로써 이탈리아의 모든 공공 정신 병원이 폐쇄됐고 이곳에 수용된 정신 질환자들은 사회로 나오게 된다. 이탈리아는 지역 사회로 나온 정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1991년 ‘법률 381(사회적 협동조합의 규정)’을 통해 최소 30퍼센트의 장애인 고용 의무를 보장했고, 장애인의 일자리 제공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에 세금 공제 혜택을 줬다.
이탈리아 영화 〈위 캔 두 댓(We can do that)〉은 1980년대 초 ‘법안 180’이 통과된 이후 정신 장애인이 변화하는 모습을 다룬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정신 병원이 폐쇄돼 돌아갈 곳이 없는 정신 질환자다. 이들은 직접 협동조합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정신 병원에 있을 때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러나 노동을 하고, 일을 통해 소득이 생기면서 억압된 욕구를 자연스레 표출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자신을 위해 차를 사고, 집을 사며, 극장에 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꿈꾼다. 정신 장애인은 무욕의 존재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배제로 인해 욕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에 가깝다.
정신 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 질환에 걸리는 한국에서 정신 질환은 결코 특정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적인 입시, 최장 노동 시간과 높은 업무 스트레스, 취약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홀로 살아남기를 요구하는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 정신 건강에 심각한 위험 요인이 된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어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정신과 병원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또한 약물 중심의 치료는 증상을 완화할 뿐 삶의 온전한 회복을 돕지는 못한다. 강제 입원, 열악한 치료 환경, 그리고 장기 입원은 그 자체로 인권 침해이며, 정신 질환자에게 증상보다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집과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정신 질환자들이 병원과 시설에서 주거를 해결하고 있다. 코로나19 첫 사망자였던 청도대남병원의 정신 질환자는 한국 사회 속 정신 질환자의 삶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정신 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 질환을 가진 이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해답이 돼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고민할 지점은 정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물고 차별을 생산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이러한 지원 체계는 당사자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시민이 된 정신 질환자를 보면서 사회 또한 정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서서히 바꿀 것이다. 당사자는 자신의 긍정적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며 사회에 섞일 수 있다. 긍정적인 선순환이다. 건강한 사회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정신 질환, 그리고 정신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노동권, 주거권, 그리고 정당한 편의 제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