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난
완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난

전 세계를 줄 세우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 그러나 그의 손에는 혈육의 피가 묻어있다.

사우디 왕자 무함마드 빈 살만(왼쪽)과 무함마드 빈 나예프. ©Illustration: Guardian Design/Getty/AP/Shutterstock
사우디 왕자는 밤새 갇혀 있었다. 그는 아침이 밝을 무렵에야 비틀거리며 메카에 있는 국왕의 궁전을 빠져나왔다. 어디든 그를 따라다니던 개인 경호원들은 사라진 상태였다. 왕자는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안내받았다. 그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지만, 머지않아 그 자유가 구금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차량이 궁전의 문밖으로 나오자,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는 극심한 공포에 질린 채로 문자 메시지를 여러 통 보냈다.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돌아오지 마세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고문에게 쓴 메시지다. 그 고문은 몇 주 전에 이미 왕국을 조용히 빠져나간 상태였다.

몇 시간 뒤 나예프가 해변 도시 제다(Jeddah)에 있는 자신의 궁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새로운 경비병들이 배치돼 있었다. 가택 연금된 것이 분명해졌다.

“신께서 도와주시기를. 박사님, 무엇보다도 조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돌아오지 마세요.” 그가 고문에게 보낸 문자의 내용이다.

전날 밤인 2017년 6월 20일, 국왕의 조카인 나예프는 사우디 왕좌의 계승자라는 신분에서 강제로 물러나야 했다. 왕실의 한 내부자는 그 상황이 “사우디 스타일 〈대부(Godfather)〉”였다고 설명했다. 국내 안보를 담당하던 나예프는 사우디 내에서도 CIA와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다. 그해 초, 당시 CIA의 국장이던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는 미국인들의 생명을 구한 대테러 노력에 대한 공로로 나예프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2년 전 살만 국왕이 즉위했을 때, 나예프는 55세의 나이에 왕세자가 되면서 차기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막후에는 나예프와 그의 건방진 사촌이자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줄여서 MBS) 사이의 잔인한 경쟁이 있었다. 그전까지 거의 무명이었던 MBS는 부왕세자에 등극했다.

궁정 쿠데타가 있기 직전이었던 2017년 6월 5일, MBS와 중동의 다른 전제 군주들이 이웃 나라인 카타르를 상대로 징벌적 봉쇄를 가하면서 왕자들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카타르는 천연가스가 풍부한 작은 토후국(emirate)으로, 중동에서 영향력 있는 뉴스 채널인 알자지라(Al Jazeera)에서 중동의 이슬람주의자와 반체제 인사들에게 방송 시간을 내주는 등의 도발적인 움직임으로 자신보다 큰 이웃 나라들을 괴롭혀 왔다. 나예프도 카타르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는 MBS의 전투적인 접근법보다는 조용한 외교를 선호했다. 나예프는 사촌의 등 뒤에서 카타르의 통치자인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Tamim bin Hamad al-Thani)와 비밀 채널을 열어두고 있었다. “오늘 타밈에게 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했습니다.” 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나예프가 자신의 고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저는 의사소통을 위해 그에게 보안이 유지된 전화기를 한 대 보내고 싶습니다.”

위기가 한창이던 2017년 6월 20일, 나예프는 메카에 있는 살만 국왕의 궁전에서 만나자는 요청을 받았다. 이곳은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궁전으로,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한 정육면체 모양의 사원 카바(Ka’bah)가 내려다보인다. 나예프와 가까운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도착했을 때 경호원들은 외부에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혹시 모를 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MBS의 경비병들이 궁전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나예프의 뒤를 따라서 궁전으로 들어가려던 왕실의 어느 원로는 정문에서 가로막혔다. 왕자는 투르키 알 셰이크(Turki al-Sheikh)와 함께 어떤 방으로 안내받았다고 한다. 셰이크는 MBS의 막역한 친구로, 거칠고 위협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고가의 리차드 밀(Richard Mille) 시계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엔터테인먼트관리국(GAE)의 수장으로 승진했다. 이곳의 업무에는 사막에서 거대한 광란의 파티를 주최하는 것도 있었다.

셰이크는 나예프를 그 방에 몇 시간 동안 가둬 둔 채, 사임서에 서명하고 MBS에게 충성을 약속하라고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나예프는 이를 거절했다. 나예프와 가까운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왕권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그의 여성 가족들이 강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나예프에게는 고혈압 및 당뇨에 대한 치료제가 주어지지 않았고, 자의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다음 행선지는 병원이 될 거라는 말도 들었다. 왕실의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그날 밤 그는 독극물 중독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나예프는 왕위 계승 서열을 추인하는 왕실 기구인 충성위원회(Allegiance Council)의 왕자 두 명과 이야기하는 걸 허락받았다. 그는 그들이 이미 MBS에게 굴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았다. 날이 밝을 무렵, 모든 것이 끝났다. 나예프는 불안하고 지친 상태가 되어 항복했다. 그가 옆방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MBS는 텔레비전 카메라, 그리고 총을 든 경비병 한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사우디 방송국에서 공개된 영상을 보면, 셰이크가 구금돼 있던 왕자의 등에 금테 달린 가운을 급히 걸쳐주는 모습이 잠시 나온다. 카메라가 도는 가운데 MBS는 자신의 사촌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연기하듯 몸을 굽히고 그의 손과 무릎에 입을 맞췄다.

“제가 충성을 맹세했을 때, 등 뒤에는 총이 있었습니다.” 나예프가 후에 자신의 고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이후 며칠 사이에 공공건물에서 나예프의 포스터가 사라졌다. MBS는 이제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으며, 불과 31세의 나이에 이 나라에서 사실상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되었다. 80대의 국왕이 국가 원수로 남아 있었지만, MBS는 사우디의 안보, 경제, 석유를 움직이는 모든 장치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진 일상의 통치자가 되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사랑을 받으며 한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차기 통치자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나예프는 이제 죄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욱 나쁜 일이 남아 있었다.
2017년 리야드. 군인들이 (왼쪽부터 차례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살만 국왕,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자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앞을 지나서 행진하고 있다. ©Photograph: Fayez Nureldine/AFP/Getty Images

 

1. 왕자의 난


이러한 궁정 쿠데타와 그로부터 나온 권력 게임은 당시 대중의 시야에서 대부분 가려져 있었고, 선전 자료를 포함한 일부 정보들만이 언론에 유출됐다. 예를 들어 국제적인 매체들에게는 나예프가 모르핀과 코카인 중독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어 국익을 위해 뒤로 물러났다는 정보가 제공됐는데, 나예프의 동료들에 따르면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사우디와 같은 강력한 감시 국가에서는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특히나 어렵다. 일부 사우디 사람들은 민감한 사안을 논의하는 동안 그들의 휴대전화를 냉장고에 넣어 둘 정도다. 런던과 워싱턴의 사우디 대사관은 이번 기사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2017년에 있었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충격적인 여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몇몇 고위 왕족 및 인맥이 좋은 관계자들이 왕실의 비밀에 대해 조금씩 정보를 흘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MBS의 시대에 영향력과 재산을 빼앗겼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투옥되거나 고문받기도 했다.

그런 관계자들 가운데 핵심 인물은 사드 알자브리(Saad Aljabri)다. 그는 나예프의 최측근 고문이자 정보책임자였다. 나예프가 궁정 쿠데타 직후 국왕의 궁전에서 풀려나자마자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이 바로 알자브리였다. 63세의 알자브리는 오랫동안 음지에서 활동해 왔으며,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족을 제외하고 가장 막강한 사람이 알자브리라고 여겼다. 알자브리와 몇 년 동안 함께 일했던 미국의 한 전직 관료는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 국가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숨은 권력의 연락책”이었다고 설명했다. 9·11 이후 몇 년 동안 알자브리는 사우디 내무부에서 승진을 거듭하면서 결국엔 대테러 작전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 알자브리와 그의 후원자였던 나예프는 함께 사우디의 안보·감시 장비 현대화 작업을 했다. 그들은 또한 대테러를 구실로 평화활동가들을 목표로 삼았으며, 훗날 MBS가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경찰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예프와 알자브리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들은 북미에서의 법정 기록과 해외에 있던 알자브리를 체포해 달라는 사우디의 요청을 거부한 인터폴의 결정을 통해서 빛을 봤다. 그 문서들에 있는 메시지들은 알자브리를 변호하는 국제 로펌인 노튼로즈풀브라이트(Norton Rose Fulbright)가 고용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에 의해 진본임이 밝혀졌는데, 법원 진술서에 의하면 그들은 알자브리의 아이폰을 확보하고 있다. 알자브리 측은 이전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던 몇 개의 메시지들을 공유해 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근대 국가의 기틀을 확립한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Abdulaziz Al Saud)의 아들들 사이에서 수평적으로 계승되면서 방대한 왕가의 다양한 분파들 사이에서 미묘한 권력의 균형을 보장해 왔다. 나예프의 승계는 사상 처음으로 그 아래 세대로의 왕권 전수가 될 예정이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왕실의 다른 분파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궁정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단지 MBS의 주요 라이벌을 옆으로 밀어낸 것만이 아니다. 왕실의 같은 분파 내에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권력이 직접 계승되는 상황이 조성되면서, 연공서열과 합의를 중요하게 여겼던 왕가의 오래된 후계 모델이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MBS가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이전의 어떤 통치자보다도 더욱 많은 권력을 끌어모을 수 있게 했다.

이 쿠데타는 MBS와 나예프 사이에 몇 달 동안 이어졌던 적대 상황의 정점이었다. 이 갈등의 주요한 지점들 가운데 하나는 신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호의를 얻기 위한 둘의 경쟁이었다. 나예프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MBS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고 한다. 그 대상은 MBS의 보좌관들이나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의 고문이었던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 같은 협력자들이었다. 이러한 염탐 덕분에 그는 MBS가 워싱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예프가 알자브리에게 보여준 2017년 봄의 감청 통화 녹취록에 의하면, MBS는 쿠슈너와 왕위 계승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해당 통화에서 MBS는 쿠슈너에게 자신이 “세 군데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알자브리가 이 녹취록을 봤을 당시, 나예프는 세 군데의 기관이 CIA와 FBI, 그리고 국가안보국(NSA)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모두는 오랫동안 나예프에게 호의적인 곳이었다. 알자브리와 나예프가 보기에, MBS는 자신의 왕권 승계를 위해 미국의 지지를 공고히 하려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2017년 5월, 나예프는 직접 트럼프의 백악관에 접근하려 시도했다. 그는 이후 스트리크글로벌디플로마시(Stryk Global Diplomacy)로 이름을 바꾸는 워싱턴 소재의 로비 업체 소노란폴리시그룹(Sonoran Policy Group)을 고용했다. 소노란은 트럼프 측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워싱턴 소재의 로비 업체로, 나예프의 내무부에게 “워싱턴에서의 폭넓은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고용됐다.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나예프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왔던) 자신의 과거 기록이 자신만만하며 독특한 신임 대통령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의 정보기관들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예프는 미국의 신임 대통령에게 자신이 단지 오랜 파트너가 아니라 사촌 동생보다 더욱 가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알자브리는 540만 달러 규모의 로비 계약 협상에 사우디의 외무부 대리로 직접 관여했다.

이 계약에 대한 소식이 퍼져 나가자, 알자브리는 전쟁 중인 왕자들 사이에 끼는 것이 두려워졌다. 2017년 5월, 그는 트럼프가 리야드를 방문하기 불과 며칠 전에 조용히 튀르키예로 빠져나갔다. 알자브리의 두려움에는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사우디를 떠난 직후, 알자브리는 로비 계약의 주요 서명자인 나예프 휘하 첩보 기관의 한 관료가 MBS의 충성파들에게 붙잡혀 해당 로비 활동에 대해 심문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2017년 6월 4일, 알자브리는 베테랑 보안 관계자인 압둘아지즈 호와이리니(Abdulaziz Howairini)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이 “추위 속의 단식(fasting in the cold)”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는 튀르키예에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는 암호였다. 지금은 MBS의 직속 부하가 된 호와이리니는 알자브리에게 문자로 MBS의 충성파들이 그를 붙잡기 위해 “매우 열성적”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MBS의 맹렬한 반발은 나예프가 스트리크와의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나예프는 알자브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MBS는 그 계약을 트럼프 가족들과의 관계를 망가트리려는 음모라고 여기고 있으며 살기가 등등하다고.

6월 18일, 알자브리는 MBS로부터 갑작스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와서 나예프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갈등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MBS는 이렇게 썼다. “당신보다 나예프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어조는 이례적으로 부드러웠다. MBS와 알자브리의 관계는 2015년부터 틀어져 있었다. 2015년에 살만 국왕은 군주에게 아무런 보고도 없이 당시 CIA의 국장이었던 존 브레넌(John Brennan)과 당시 영국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필립 해먼드(Philip Hammond)와 만났다는 이유로 알자브리를 해고했다. 여기에는 MBS의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자브리는 그 일을 나예프를 약화시키려는 MBS의 시도 중 하나로 치부하면서, 나예프와는 비공식적으로 협력을 계속했다. 그러던 MBS가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거는 잊어버립시다. 우리가 지금 아이들입니까? 저를 용서하고 신 앞에서 저를 면죄해 주세요.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알자브리는 치료를 위해서 당분간 떠나 있어야 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틀 뒤, MBS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2017년 5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와 도널드 트럼프. ©Photograph: Evan Vucci/AP

 

2. 회유와 협박


쿠데타 이후 몇 달 동안, 알자브리는 튀르키예에서 계속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는 직계 가족들과 함께 있었지만, 아이들 중에서 두 명은 예외였다. 쿠데타 당일에 리야드에서 비행기 탑승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그는 비밀리에 나예프와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나예프의 거동에는 제약이 있었다. 한편, MBS는 내무부를 포함하는 보안 기관을 신속히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내무부에서 나예프의 충성파들이 축출되고 대테러를 포함한 핵심 기능을 박탈당했다. MBS는 대중의 작은 반대 조짐에도 강하게 대응했다.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고, 2017년 9월에는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영향력 있는 성직자와 지식인들이 체포됐다.

같은 달, 알자브리는 MBS에게 자신의 아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MBS는 알자브리가 먼저 귀국해서 나예프와 관련된 ‘매우 민감한 파일’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S는 문자 메시지로 이렇게 물었다. “박사님, 당신을 데리러 가려면 어디로 비행기를 보내야 할까요?” 알자브리는 귀국할 의사가 없었고, 그가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며 MBS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온갖 아부성 발언들로 가득한 메시지를 통해서 알자브리는 MBS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알자브리는 이렇게 썼다. “저에게는 국가의 민감한 정보가 많이 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유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충성 사례들을 줄줄이 언급하면서, 자신이 ‘무지타히드(Mujtahid)’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고 했다. 무지타히드는 왕실 내 익명의 내부 고발자로, 사우디 왕가에서 오랫동안 눈엣가시로 여겨져 왔다. “제가 사우디로 돌아가면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가 왕국의 외부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을까요? 왕국에서 저는 폐하의 통치에 여전히 충성하고, 해가 될 만한 것은 어떤 것이든 발설을 거부할 것이며, (중략)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폐하와 함께할 것입니다.”

MBS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알자브리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그를 뒤쫓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이러한 위협을 받은 후 알자브리는 튀르키예에서 캐나다로 도망쳤다. 2017년 말,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자브리가 국가 자금 수십억 달러어치를 훔쳤다는 혐의로 인터폴을 통해 그를 체포하려 시도했고, 그를 넘기라며 캐나다를 압박했다. 두 가지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 알자브리의 말에 따르면, 그러던 2018년 10월, 그는 어떤 중동 국가의 스파이들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가 암살 대상이며, 사우디의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자브리는 사우디의 보복을 우려하여 해당 국가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달, 캐나다의 국경 관리대가 타이거스쿼드(Tiger Squad)의 입국을 막고 추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거스쿼드는 사우디가 후원하는 암살 조직인데, 관광비자로 캐나다 입국을 시도했던 것이다. 리야드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며 부인했지만, 캐나다의 관계 당국이 암묵적으로 인정한 바에 따르면, 이 계획은 같은 달 타이거스쿼드가 튀르키예의 사우디 외교 공관에서 반체제 저널리스트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를 살해한 방식과 소름끼칠 정도로 유사했다.

알자브리와 협업했던 미국인들이 보기에 MBS가 그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미국의 전직 관료는 알자브리가 사우디를 탈출한 것은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1]의 대행이 워싱턴을 떠나서 모스크바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구 전역의 숨은 권력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사우디 왕실의 모든 약점과 실수를 알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나예프의 최측근 고문이자 정보책임자였던 사드 알자브리. ©Photograph: CBS

 

3. 돈과 피


지난해 겨울 어느 상쾌한 아침, 나는 워싱턴DC에 있는 어느 5성급 호텔로 초대받았다. 알자브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칼리드(Khalid)를 만나기 위해 토론토에서부터 이곳으로 찾아왔다. 심장병 전문의인 칼리드는 세상을 버린 아버지의 비공식 대변인이었다. 내가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내 전화기에서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울렸다. “호텔 밖에서 만납시다.” 몇 분 뒤, 한 남자가 다가와서 나를 같은 지역의 또 다른 고층 건물로 급히 데려갔다. 워싱턴 정계의 일부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의 외부에는 “미국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US Secret Service)”이라는 마크가 달린 SUV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알자브리는 사방이 막힌 옥상에 있었다. 그는 짙은 색 정장을 입고 금속 테두리의 안경을 착용한 상태로 소파에 앉아서 워싱턴 시내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벽걸이 난로에서는 온기가 뿜어져 나왔고, 배경으로 희미한 그랜드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착하자 알자브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 제퍼슨 기념관, 워싱턴 기념비, 백악관 등의 랜드마크를 가리키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알자브리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워싱턴DC를 피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상원의원 및 안보 관계자들을 포함해 영향력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까지 닿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경계했고, MBS와 트럼프의 화기애애한 관계는 더욱 큰 경계 대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알자브리는 만약에 자신이 나예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삶의 궤적이 얼마나 달랐을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알자브리는 영국의 에든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인공지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사우디의 내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때 아람코(Aramco)에서 일하기 위해 공직 생활을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아람코는 국영 석유 기업으로, 사우디의 최대 돈줄이다. 그러나 나예프가 그를 막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운명이 함께 뒤얽힌 모양이 됐다.

쿠데타 이후, 알자브리의 일가와 측근 약 40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억류됐다. 알자브리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현재 감금돼 있는 두 자녀 사라(Sarah)와 오마르(Omar)의 사진을 보여 줬다. 이때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 사람은 현재 각각 22살과 24살이다. 그들은 2020년 3월에 체포돼 비공개 재판을 받았고, 자금 세탁 및 사우디아라비아를 불법적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알자브리의 사위도 현재 구금돼 있다. 알자브리는 만약 한쪽 끝에는 MBS가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알자브리 자신이 서 있는 다리 위에서 교환의 기회가 있다면, 단숨에 교환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몸값을 가져왔으니 인질들을 풀어줘.”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

자신의 자녀들이 투옥된 이후인 2020년 8월, 알자브리는 워싱턴에서 엄청난 소송을 제기하며 MBS가 자신에게 암살 집단을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훗날 판사는 소송 서류가 마치 “톰 클랜시(Tom Clancy)의 소설” 같다고 언급했다. 알자브리는 자신이 막강한 독재자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행동을 통해 최소한 그의 측근 하나가 “MBS 신발 속의 자갈”이라고 묘사한 상황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2021년 초, 이 소송으로 인해 보스턴과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됐다. 이는 사우디 국가와 연계된 기업 10개가 제기한 것으로, 알자브리는 이를 보복 소송이라고 생각했다. 해당 기업들은 원래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나예프가 설립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사우디의 국부 펀드가 장악하고 있으며, 국부 펀드의 회장은 MBS다. 이 기업들은 알자브리와 그의 측근이 35억 달러를 사취했다고 비난했다. 알자브리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면 그 기업들의 사업과 재정 내역을 공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해당 기업의 내부 실상은 비밀스러운 활동을 위해 파악하기 어렵게 돼있다.

보스턴에 보관된 미국 법무부의 법정 문건들에 의하면, 미국의 관료들은 알자브리와 MBS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비밀스러운 활동이 공개적으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예전에 리야드 주재 미국 외교 공관에 근무했던 미국의 한 관료에 의하면 사우디는 합의에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알자브리가 침묵을 유지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알자브리는 MBS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왕실의 고위 고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자브리는 “재정적이며 법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알자브리 측은 그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나와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사우디의 지도층이 그러한 보상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의 관료들이 강력히 권고해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백악관에 보냈다. 그러나 MBS는 묵묵부답이었다.

MBS의 지지자들은 알자브리의 재정적인 합의에 대한 열망이 자신의 유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알자브리 측은 MBS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자브리에 대한) 부패 혐의가 정치적 반대파를 추궁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법정 싸움은 길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워싱턴 법원은 인적 관할권(personal jurisdiction)이 없다는 이유로 알자브리가 MBS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알자브리 측은 이 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 사안으로 분류된 정보의 공개를 막기 위해 ‘국가기밀특권(state secrets privilege)’을 발동하자, 보스턴 법원은 알자브리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을 기각했다. (해당 기업들도 이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온타리오 법원에서는 아직 그 기밀들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 올해 초의 법정 문서들을 보면 미국 정부 측의 변호사들이 그 결과를 막기 위해 캐나다 정부 측과 협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알자브리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계속 진행되더라도, 그의 부패 혐의를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울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대테러 관련 지출을 감독했던 사람이자 핵심 증인인 나예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4.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


2017년 말, 나예프의 가택 연금 조건이 느슨해졌지만, 왕국 밖으로 여행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알자브리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처음에만 하더라도 나예프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자신의 공식 직함을 잃어버리고 그 대가로 막대한 재정적 보상을 받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임자였던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Muqrin bin Abdulaziz) 왕자와 동일한 처우를 기대했다. 사우디 정보국의 국장이기도 했던 무크린은 2015년에 왕세자의 지위에서 쫓겨났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살만 국왕이 무크린 왕세자를 폐위한 뒤, 무크린은 약 8억 달러에 달하는 왕실 전별금과 호화 요트인 솔란지(Solandge)를 포함하여 아주 후한 작별 선물을 받았다.

반면에, 나예프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압류당했다. 2017년 12월 10일, 나예프는 제네바의 HSBC 은행으로 서한을 보내서 자신의 “유로, 파운드, 달러화 잔고”를 사우디의 은행 계좌로 이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예프의 자산에 대해서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제네바의 은행 측 담당자와 변호사들은 나예프 왕자가 협박을 받아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그러한 요청을 묵살했다고 한다. (HSBC는 그 편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은행 측은 안전상의 이유로 그 편지에 기재된 관계자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예프의 해외 보유 자산 총규모는 명확하지 않다. 나예프의 동료들은 그가 유럽과 미국에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최고급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예프가 자신의 국내 자산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유럽의 관계자가 ‘압류된’ 그의 회사와 은행 잔고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표로 정리해서 제공해 줬다. 그에 따르면 그의 총자산은 52억 2000만 달러다. 왕자와 가까운 또 다른 관계자는 약간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해 줬는데, 상세 내역은 비슷했다. 그에 의하면 압류된 ‘총 가치’는 178억 리얄(47억 5000만 달러)이었다.

2018년과 2019년에 나예프는 왕국을 떠나는 것이 허용되진 않더라도 비교적 자유를 누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알제리 사막에서의 매 사냥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사냥하러 가는 건 가능했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말에 공개된 한 영상에서는 한 무리의 지지자들이 왕자와 함께 셀카도 찍고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에 사태가 급변했다. 나예프에게는 확실히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우디 정부가 리야드 외곽의 사막에 있는 그의 휴양지를 급습했고, 그는 구금됐다. 앞서 소개한 유럽의 관계자에 따르면, 몇몇 직원들 역시 구금됐다고 한다. 나예프는 6개월 이상 독방에 갇혀 있었다. 관계자는 그 기간 동안 “그가 심각하게 학대당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나예프는 발목이 매달린 채로 고문받았다. “그 때문에 그는 현재 다리 아래쪽과 발목에 오랜 회복이 필요한 부상을 입었고, 걷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체중도 상당히 많이 줄었습니다.”

유럽의 그 관계자에 따르면, 나예프는 2020년 말경에 사우디 국왕의 공식 거처이자 정부의 본청사가 있는 리야드의 야마마(Yamamah) 궁궐 단지 영내로 이송됐다고 한다. 나예프는 작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며, 항시적으로 그에 대한 영상과 녹취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왕실의 특정한 구성원들을 제외하고는 방문객이 허용되지 않으며, 개인 주치의나 법률 대리인을 접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는 읽어 보지도 못하고 다수의 문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2021년 봄, 유럽에 있는 나예프의 은행 담당자들과 변호사들은 그의 재산을 이체해 달라는 새로운 요청을 받았다. 이 논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그 요청에는 나예프가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건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 이전에 나예프로부터 위임장을 부여받은 그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요청을 거절했다. 왕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찾아와서 직접 확인하라며 그 변호사를 초청했다. 그 관계자는 나예프가 “‘나는 자유롭네, 자네가 리야드에 오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나예프가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로 찾아와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체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변호사에게 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그는 해당 대화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언론의 개입이 자신의 의뢰인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유럽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예프가 붙잡혀 있는 주된 이유는 (빈 살만) 왕세자가 그를 왕위 승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MBS가 나예프의 돈을 추적하면서 그를 모욕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왕세자를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사우디의 저널리스트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 2주기를 맞이한 2020년 10월에 이스탄불의 사우디 외교 공관 근처에서 카슈끄지의 포스터를 든 시위대의 모습. ©Photograph: Emrah Gürel/AP

 

5. 화려한 가면 속의 빈 살만


나는 리야드의 중심부에 있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고급 호텔에서 MBS 측의 가장 저명한 공보 비서관을 만났다. 그의 옆에는 왕실의 고위 관료도 앉아 그 미팅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전의 몇 차례 만남으로 보건대, 그 비서관은 MBS를 과감한 사회적 개혁을 추진하는 선지자로 만드는 국가 캠페인의 일원임이 분명했다. 그는 왕세자가 수십 년 동안 금지됐던 여성들의 운전과 영화관 관람을 어떻게 해제했는지, 한때는 금지됐던 음악 콘서트를 어떻게 허용했으며, 이성 간의 어울림을 단호히 반대했던 종교 경찰의 권력을 어떻게 억제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MBS에게는 용기가 있습니다.”

2020년 3월 저녁의 만남에서, 커피 한 잔과 누텔라를 듬뿍 바른 크레페 접시 위로 몸을 웅크린 비서관은 나예프가 최근에 실종됐다는 기록을 바로잡고 싶어 했다. 사우디 정부는 나예프를 비롯하여 고위 왕족 내에서 MBS의 또 다른 라이벌인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Ahmed bin Abdulaziz) 왕자가 구금된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 미팅은 내가 그들의 공식적인 해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공보 비서관은 외국 언론들이 지어내는 이야기를 일축시키려 했다. 외국 언론들은 왕자들이 구금된 이유로 MBS와 그의 부친인 현 국왕을 권좌에서 쫓아내려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는 추정을 했다. 비서관의 말에 따르면 MBS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구금은 “두 왕자의 부정적인 행동들이 누적되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숙청은 왕실 내의 “기강”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부정적인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왕자들이 조만간 풀려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뒤로 거의 3년이 지났지만, 왕자들은 여전히 구금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잠시 걸프 정책을 총괄했던 키어스틴 폰텐로즈(Kirsten Fontenrose)는 지난해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모두 무함마드 빈 나예프 석방을 요청했습니다. (중략) 사우디 지도층과 비공개로 만난 자리에서 아주 중요한 화두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무함마드 빈 살만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차기 왕권에 도전하는 가시적인 라이벌은 없다. MBS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현재 행적을 보면, 그가 부친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는 걸 막을 것은 없다. 카슈끄지 살해에 대한 전 세계의 분노, 사우디가 주도한 예멘에서의 파괴적인 전쟁[2], 자국 내에서 점점 거세지고 있는 억압 등, 그 어떤 것도 이 나라에 대한 그의 장악력을 뒤흔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독재자와 비즈니스를 하면 평판 리스크(reputational risk)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부유한 산유국인 사우디와의 거래를 성사시키려 열망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카슈끄지의 살해와 관련된 사건에서 최근에 미국이 MBS에게 주권자의 면책특권(sovereign immunity)을 적용하기로 한 결정이 앞으로도 그가 자신에 대한 비판 세력을 더욱 대담하게 뒤쫓게 만들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왕실의 관계자는 내게 만약 나예프가 언젠가 MBS와 함께 공개석상에 나타나서 자신을 무너트린 그 남자에게 축복을 전하는 광경을 목격하더라도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예프에 대한 처우를 개인적으로는 비난하면서도, 혹시 모를 보복을 피하기 위해 공개적으로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2017년의 쿠데타 이후에 연출된 영상과 비슷하게 MBS의 시대와 그의 폭력적인 권력 쟁취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 될 것이다.
[1]
FBI의 전설적인 국장
[2]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예멘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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