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돈과 피
지난해 겨울 어느 상쾌한 아침, 나는 워싱턴DC에 있는 어느 5성급 호텔로 초대받았다. 알자브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칼리드(Khalid)를 만나기 위해 토론토에서부터 이곳으로 찾아왔다. 심장병 전문의인 칼리드는 세상을 버린 아버지의 비공식 대변인이었다. 내가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내 전화기에서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울렸다. “호텔 밖에서 만납시다.” 몇 분 뒤, 한 남자가 다가와서 나를 같은 지역의 또 다른 고층 건물로 급히 데려갔다. 워싱턴 정계의 일부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의 외부에는 “미국국토안전부 비밀수사국(US Secret Service)”이라는 마크가 달린 SUV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알자브리는 사방이 막힌 옥상에 있었다. 그는 짙은 색 정장을 입고 금속 테두리의 안경을 착용한 상태로 소파에 앉아서 워싱턴 시내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벽걸이 난로에서는 온기가 뿜어져 나왔고, 배경으로 희미한 그랜드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착하자 알자브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 제퍼슨 기념관, 워싱턴 기념비, 백악관 등의 랜드마크를 가리키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알자브리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워싱턴DC를 피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상원의원 및 안보 관계자들을 포함해 영향력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까지 닿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경계했고, MBS와 트럼프의 화기애애한 관계는 더욱 큰 경계 대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알자브리는 만약에 자신이 나예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삶의 궤적이 얼마나 달랐을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알자브리는 영국의 에든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인공지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사우디의 내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때 아람코(Aramco)에서 일하기 위해 공직 생활을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아람코는 국영 석유 기업으로, 사우디의 최대 돈줄이다. 그러나 나예프가 그를 막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운명이 함께 뒤얽힌 모양이 됐다.
쿠데타 이후, 알자브리의 일가와 측근 약 40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억류됐다. 알자브리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현재 감금돼 있는 두 자녀 사라(Sarah)와 오마르(Omar)의 사진을 보여 줬다. 이때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 사람은 현재 각각 22살과 24살이다. 그들은 2020년 3월에 체포돼 비공개 재판을 받았고, 자금 세탁 및 사우디아라비아를 불법적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알자브리의 사위도 현재 구금돼 있다. 알자브리는 만약 한쪽 끝에는 MBS가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알자브리 자신이 서 있는 다리 위에서 교환의 기회가 있다면, 단숨에 교환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몸값을 가져왔으니 인질들을 풀어줘.”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
자신의 자녀들이 투옥된 이후인 2020년 8월, 알자브리는 워싱턴에서 엄청난 소송을 제기하며 MBS가 자신에게 암살 집단을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훗날 판사는 소송 서류가 마치 “톰 클랜시(Tom Clancy)의 소설” 같다고 언급했다. 알자브리는 자신이 막강한 독재자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행동을 통해 최소한 그의 측근 하나가 “MBS 신발 속의 자갈”이라고 묘사한 상황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2021년 초, 이 소송으로 인해 보스턴과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됐다. 이는 사우디 국가와 연계된 기업 10개가 제기한 것으로, 알자브리는 이를 보복 소송이라고 생각했다. 해당 기업들은 원래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나예프가 설립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사우디의 국부 펀드가 장악하고 있으며, 국부 펀드의 회장은 MBS다. 이 기업들은 알자브리와 그의 측근이 35억 달러를 사취했다고 비난했다. 알자브리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면 그 기업들의 사업과 재정 내역을 공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해당 기업의 내부 실상은 비밀스러운 활동을 위해 파악하기 어렵게 돼있다.
보스턴에 보관된 미국 법무부의 법정 문건들에 의하면, 미국의 관료들은 알자브리와 MBS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비밀스러운 활동이 공개적으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예전에 리야드 주재 미국 외교 공관에 근무했던 미국의 한 관료에 의하면 사우디는 합의에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알자브리가 침묵을 유지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알자브리는 MBS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왕실의 고위 고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자브리는 “재정적이며 법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알자브리 측은 그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나와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사우디의 지도층이 그러한 보상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의 관료들이 강력히 권고해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백악관에 보냈다. 그러나 MBS는 묵묵부답이었다.
MBS의 지지자들은 알자브리의 재정적인 합의에 대한 열망이 자신의 유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알자브리 측은 MBS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자브리에 대한) 부패 혐의가 정치적 반대파를 추궁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법정 싸움은 길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워싱턴 법원은 인적 관할권(personal jurisdiction)이 없다는 이유로 알자브리가 MBS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알자브리 측은 이 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 사안으로 분류된 정보의 공개를 막기 위해 ‘국가기밀특권(state secrets privilege)’을 발동하자, 보스턴 법원은 알자브리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을 기각했다. (해당 기업들도 이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온타리오 법원에서는 아직 그 기밀들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 올해 초의 법정 문서들을 보면 미국 정부 측의 변호사들이 그 결과를 막기 위해 캐나다 정부 측과 협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알자브리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계속 진행되더라도, 그의 부패 혐의를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울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대테러 관련 지출을 감독했던 사람이자 핵심 증인인 나예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4.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
2017년 말, 나예프의 가택 연금 조건이 느슨해졌지만, 왕국 밖으로 여행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알자브리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처음에만 하더라도 나예프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자신의 공식 직함을 잃어버리고 그 대가로 막대한 재정적 보상을 받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임자였던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Muqrin bin Abdulaziz) 왕자와 동일한 처우를 기대했다. 사우디 정보국의 국장이기도 했던 무크린은 2015년에 왕세자의 지위에서 쫓겨났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살만 국왕이 무크린 왕세자를 폐위한 뒤, 무크린은 약 8억 달러에 달하는 왕실 전별금과 호화 요트인 솔란지(Solandge)를 포함하여 아주 후한 작별 선물을 받았다.
반면에, 나예프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압류당했다. 2017년 12월 10일, 나예프는 제네바의 HSBC 은행으로 서한을 보내서 자신의 “유로, 파운드, 달러화 잔고”를 사우디의 은행 계좌로 이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예프의 자산에 대해서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제네바의 은행 측 담당자와 변호사들은 나예프 왕자가 협박을 받아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그러한 요청을 묵살했다고 한다. (HSBC는 그 편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은행 측은 안전상의 이유로 그 편지에 기재된 관계자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예프의 해외 보유 자산 총규모는 명확하지 않다. 나예프의 동료들은 그가 유럽과 미국에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최고급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예프가 자신의 국내 자산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유럽의 관계자가 ‘압류된’ 그의 회사와 은행 잔고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표로 정리해서 제공해 줬다. 그에 따르면 그의 총자산은 52억 2000만 달러다. 왕자와 가까운 또 다른 관계자는 약간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해 줬는데, 상세 내역은 비슷했다. 그에 의하면 압류된 ‘총 가치’는 178억 리얄(47억 5000만 달러)이었다.
2018년과 2019년에 나예프는 왕국을 떠나는 것이 허용되진 않더라도 비교적 자유를 누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알제리 사막에서의 매 사냥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사냥하러 가는 건 가능했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말에 공개된 한 영상에서는 한 무리의 지지자들이 왕자와 함께 셀카도 찍고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에 사태가 급변했다. 나예프에게는 확실히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우디 정부가 리야드 외곽의 사막에 있는 그의 휴양지를 급습했고, 그는 구금됐다. 앞서 소개한 유럽의 관계자에 따르면, 몇몇 직원들 역시 구금됐다고 한다. 나예프는 6개월 이상 독방에 갇혀 있었다. 관계자는 그 기간 동안 “그가 심각하게 학대당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나예프는 발목이 매달린 채로 고문받았다. “그 때문에 그는 현재 다리 아래쪽과 발목에 오랜 회복이 필요한 부상을 입었고, 걷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체중도 상당히 많이 줄었습니다.”
유럽의 그 관계자에 따르면, 나예프는 2020년 말경에 사우디 국왕의 공식 거처이자 정부의 본청사가 있는 리야드의 야마마(Yamamah) 궁궐 단지 영내로 이송됐다고 한다. 나예프는 작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며, 항시적으로 그에 대한 영상과 녹취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왕실의 특정한 구성원들을 제외하고는 방문객이 허용되지 않으며, 개인 주치의나 법률 대리인을 접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는 읽어 보지도 못하고 다수의 문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2021년 봄, 유럽에 있는 나예프의 은행 담당자들과 변호사들은 그의 재산을 이체해 달라는 새로운 요청을 받았다. 이 논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그 요청에는 나예프가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건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 이전에 나예프로부터 위임장을 부여받은 그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요청을 거절했다. 왕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찾아와서 직접 확인하라며 그 변호사를 초청했다. 그 관계자는 나예프가 “‘나는 자유롭네, 자네가 리야드에 오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나예프가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로 찾아와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체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변호사에게 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그는 해당 대화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언론의 개입이 자신의 의뢰인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유럽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예프가 붙잡혀 있는 주된 이유는 (빈 살만) 왕세자가 그를 왕위 승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MBS가 나예프의 돈을 추적하면서 그를 모욕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왕세자를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