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가 심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저널리즘 산업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미디어의 다변화로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창구가 늘면서 뉴스 미디어는 광고주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인터넷 대중화 초기에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매개할 수 있는 광고는 단순 배너 광고 정도였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가 진전되면서 검색 광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IP TV 콘텐츠에 붙는 동영상 광고, 모바일 인스턴트 메시지를 통한 광고, SNS와 블로그를 통한 바이럴(viral) 광고 등 다양한 유형의 광고들이 가능해졌다. 광고주의 선택 범위가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광고 수주를 원하는 뉴스 미디어의 수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디지털 환경에서 고정 비용 부담이 크게 줄면서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종이 신문은 206개사, 인터넷 신문은 5664개사가 증가했다.[8] 한정된 광고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뉴스 미디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성장이 둔화되는 한국의 광고 시장에서 총 광고비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분산된다는 것은 곧 개별 미디어에 돌아갈 몫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광고주들은 전통적 언론사에 투입되던 광고비를 줄여 포털, SNS, 게임에 광고비를 늘려 나가고 있었다. 영향력과 이용량 측면에서 언론사 사이트는 더 이상 광고주에게 매력적인 광고 플랫폼이 아니었다.
결국 신문 산업 전체 매출액에서 광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부가 사업 및 기타 사업 수입 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9년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합쳐 광고 수입 비중은 전체 수입의 64.2퍼센트를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55.1퍼센트로 줄어들었다. 반면 부가 사업 및 기타 사업 수입은 2009년의 17.1퍼센트에서 2015년의 25.4퍼센트로 비중이 늘어났다.[9] 저널리즘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매출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사의 수익 구조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뉴스 미디어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낡은 수익 모델이 붕괴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수익 모델은 부재했다. 뉴스 콘텐츠 유료화를 통해 자생적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미 뉴스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었고, 언론사들은 독창적이고 희소성 있는 차별적 뉴스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역량이 없었다.
재정 위기와 미래의 불투명성 속에서 뉴스 미디어들은 오랫동안 지켜 온 저널리즘의 원칙을 포기하거나 유보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민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민에 충성하는 저널리즘의 규범적 모델은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널리즘의 오랜 규율인 편집과 광고 영역 간 엄격한 분리는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거나 강조되어 왔지만, 이제 그 경계는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편집국이 광고 수주 활동의 전면에 나서 주도적으로 광고나 협찬을 위한 기사를 기획하는 경우가 흔해졌고 때로는 편집국장이 직접 영업에 나서기도 한다. 연초에 사장과 편집국장이 주요 대기업을 돌아다니며 광고와 협찬을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는 관행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광고국 선임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광고와 기사의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들도 있고, 일부 언론사는 적극적 영업 활동을 통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건당 수백만 원을 받고 홍보성 카드 뉴스를 제작한 뒤 광고임을 명시하지 않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예 광고와 뉴스 간의 경계가 해체되는 현상도 시작됐다. 광고와 뉴스가 일체화된 콘텐츠인 네이티브 광고(native advertising)가 그것이다. 뉴스 내용 안에 광고를 집어넣어 기존의 양식에 비해 광고 효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네이티브 광고는 디지털 시대에 저널리즘 생존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되며 이미 여러 언론사들에 의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행태는 과거에도 이따금씩 또는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일들이 불가피한 경우에 비공식적으로 예외나 금기를 무너뜨린 일탈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현장의 기자들 중 상당수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과거에는 노조와 기자 협회를 기반으로 구성된 공정 보도 위원회 등 기자들이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들이 일탈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담당했지만, 많은 언론사에서 이들 조직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라는 평가다.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도 경영 위축을 의식하여 편집의 독립성 훼손을 일정 부분 용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대기업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가 내부로부터 심한 눈총을 받기도 한다. 기자 집단 내부에 자기 검열과 현실 순응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10]
언론 역시 민주주의나 윤리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정보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생존을 위협받는 위기를 앞에 두고 저널리즘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기자들과 언론사 조직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규범적 모델이 현장의 기자들과 뉴스 생산 과정을 구속하고 규율하는 힘은 크게 약화되었다. 나아가 뉴스 미디어들은 단기적 생존을 위한 수동적 대응 차원을 넘어 새로운 규범 모델을 구성하는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디지털 혁신 프로젝트였다.
2014년을 전후로 뉴스 미디어들은 ‘디지털 퍼스트’라 이름 붙인 혁신 전략을 통해 생산 공정과 조직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수원일보가 국내 일간지 가운데 최초로 종이 신문 인쇄를 중단하고 100퍼센트 인터넷 신문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새로운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을 구축하고 웹사이트 개편을 단행했다. 2014년 9월 한겨레는 ‘혁신 3.0’ 프로젝트 가동을 선언하고 종이 신문에 집중된 역량을 디지털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2015년 9월 〈중앙 혁신 보고서〉를 내놓고 통합 뉴스룸을 구축하는 등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여기에 일부 지식인 그룹이 생산하는 혁신 저널리즘 담론이 논리를 제공했다. 디지털 퍼스트 전략과 혁신 저널리즘 담론은 순식간에 미디어 업계의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 디지털 혁신의 열풍은 신문과 방송,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뉴스 미디어의 생존과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이 불가피한 것처럼 묘사되었다. 다른 목소리는 기득권의 저항이나 비현실적 공상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혁신 저널리즘 담론이 말하는 디지털은 결코 가치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저널리즘의 디지털 혁신을 주창하는 담론들이 고쳐서 새롭게 하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과거의 규범적 모델이었다.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민주주의와의 연결 고리보다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혁신 저널리즘 담론의 주장이었다.
“저널리즘 관점이 아닌 철저히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신문 산업이 어떻게 존속할지를 선택하는 문제를 저널리즘 차원에서 접근할 때의 리스크는 생각보다 크다”[11]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저널리즘의 아름다운 복권’을 주장하는 것은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절대 다수의 기자를 보지 못한 ‘무책임한 낭만적 소신’이라는 평가[12]도 나왔다. 저널리즘이 현실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당분간 민주주의 사회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기존의 가치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이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뉴스의 수용자를 독자(reader)나 시민(citizen)이 아닌, 소비자(consumer)나 고객(customer)으로 호명한다는 점이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은 2013년 아마존 회장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인수한 뒤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를 모범 사례로 즐겨 인용해 왔다. 뉴스 미디어를 민주주의와 무관한 디지털 회사, 플랫폼 회사로 규정하는 워싱턴포스트의 변신에 대해 혁신 담론은 “한국판 베조스 효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13] 오로지 “순방문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1퍼센트가 늘었다”는 이유였다. 놀라운 약진을 하게 된 배경에는 독자라는 말 대신 고객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조직의 인식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석되었다.[14]
수용자에 대한 호명 방식은 뉴스 미디어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직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미디어의 정체성과 지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뉴스의 수용자를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인 시민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일원인 소비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저널리즘의 공적 가치에 대한 무관심을 엿볼 수 있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은 뉴스 가치의 판단에 있어서도 “공급자 관점을 버리고 철저히 소비자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15] 기성 저널리즘이 이용자들의 요구와 유리된 폐쇄적 기자 집단의 독단적 판단에 따라 뉴스를 생산해 왔으며, 이제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에 맞춘 새로운 뉴스 가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수용자들이 원하는 것(wants)만 제공해서는 안 되며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needs)을 제공해야 한다는 전통적 규범 모델의 신념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기존 저널리즘의 독선과 아집을 떠올린다면 나름대로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뉴스’가 결과적으로 스낵화된 연성 콘텐츠라는 점이다. 실제로 디지털 퍼스트 전략 이후 많은 언론사들은 다변화된 미디어 생태계에서 비(非)뉴스 오락 콘텐츠들과 경쟁하여 페이지 뷰를 올리기 위해 강아지와 고양이 동영상, 연예 가십, 감동적 미담 기사를 만들어 내는 데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언론사들이 SNS 환경에서 화제가 되어 ‘좋아요’를 많이 받는 등 이용자 반응도가 높은 뉴스를 만드는 데 몰두하다 보면 권력의 은폐된 비리를 탐사하거나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뉴스에 투입할 인력과 자원은 줄어든다. 이용자들의 즉각적 관심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질에 집중하는 심층적 뉴스는 사라지고 현상만 피상적으로 다루는 뉴스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뉴스의 생산과 배포를 위한 노동 과정이 변하면서 기존의 저널리즘 규범이 상정해 온 전문직주의 또한 흔들리고 있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에 따르면 이제 기자는 글만 쓸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동영상도 편집하고 빅데이터도 활용하며 코딩도 할 줄 아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다중 숙련화(multi-skilling)된 뉴스 노동자는 적은 비용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목표에 최적화된 인적 자원의 이상으로, 현실에서 보편화되기 어렵다.
실제 디지털 혁신 이후로 뉴스 노동은 탈숙련된 비전문적 노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트래픽의 압박으로 속보에 매달리게 된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피상적 사실을 단순 전달하는 기사 출고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속보 처리 성과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거나 기자별 할당을 내리고, 온라인 기사 출고 수를 집계해 속보 처리가 부진한 부서 데스크를 편집국 회의에서 압박하기도 한다. 기자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가치 없는 보도 자료나 의미 없는 기자 회견을 속보로 처리하고 있다.
기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여러 차례 기사를 작성하느라 시간 소모가 커, 과거에 비해 취재량이 줄어들었고, 피로 누적과 심리적 탈진까지 겹치며 심층적 기사의 작성, 독창적 기사의 발굴 등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디지털 환경 때문에 기자들의 숙련 전문성이 사라지고 뉴스의 품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혁신 담론은 현장에서 진행 중인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담론이 뉴스를 만드는 노동의 시각이 아닌, 뉴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의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 저널리즘 기획은 결국 뉴스의 극단적 상품화로 귀결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뉴스는 경합적 상품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분명히 상품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민주주의 사회 공동체에서 저널리즘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 규범적 모델에 의해 적절히 통제됐다. 상품의 성격과 비상품의 성격이 공존하는 특수한 존재였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정보 자본주의 체제에서 뉴스의 탈상품화된 영역들은 남김없이 상품화된다.
원인은 양질의 저널리즘과 풍족한 비즈니스가 공존하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저널리즘 수익 모델이 생명력을 다했다는 데 있다. 규범적 모델과의 유기적 결합 아래 구현되는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저널리즘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것이 광고 매출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수익 모델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
혁신 저널리즘은 이 같은 변화에 규범적 모델을 폐기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지배적인 사회적 상상의 저널리즘 버전이다. 디지털 기술은 오로지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사회 공동체와 관련된 규범은 과감히 포기되어야 한다. 혁신 저널리즘 담론이 낡은 것, 버릴 것으로 규정하는 가치들은 저널리즘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온 규범적 모델의 산물이다. 뉴스 생산을 규율하는 원리로서 전통적 규범은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뉴스는 이제 자동차나 비누와 같은 일반 소비재와 다를 바 없는, 비경합적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저널리즘은 시민 사회와 맺었던 암묵적 사회 계약을 파기했다. 이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연결해 주었던 사회적 조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현장의 기자들과 학계의 언론학자들조차 이 ‘낡은’ 렌즈를 통해 저널리즘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혁신 기획은 단순히 조직 내부의 인력과 자원이 디지털 영역에 더 많이 할당되고 언론사들이 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피상적 차원의 변화가 아니다. 뉴스룸 조직과 저널리스트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이 새로운 모델로 이동하는 근본적인 전환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저널리즘이 소멸되고 새로운 저널리즘 양식으로의 변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형성된 저널리즘 양식이 정보 자본주의 시대의 저널리즘 양식으로 교체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저널리즘 간의 상호 구성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 정치체(政治體)의 존립을 위협하는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뉴스의 극단적 상품화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위기에 대한 논의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갖는다. 뉴스 미디어의 디지털 혁신을 민주주의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