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죽이기
3화

KBS의 경영 현실

애증의 KBS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의 공영 방송 제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단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과잉 정치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한국의 공영 방송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없고, 비판의 논거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가령 현재 시점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국면과 관련하여 KBS를 둘러싼 비판의 핵심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일도 안 하면서 연봉은 1억이 넘고, 수신료까지 받는다고?”, “그렇게 편파 방송을 하면서 수신료를 받겠다고?”

방만 경영과 편파 방송. 한국의 공영 방송, KBS, 수신료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지겹게 반복 재생산되던 문구다. 이 새롭지도 않은 오래된 문장은 얼마나 유효할까? 현재로선 이런 질문도 무의미하다. 팩트보다는 여론의 판단과 인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봉 1억 프레임과 편파 방송 프레임은 한국 공영 방송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블랙홀처럼 흡수해 버린다. 설사 KBS 종사자 중 누군가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외쳐도 그 외침은 공허할 뿐이고 누구도 믿지 않으며,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우려되는 것은 이 프레임이 KBS 내부뿐만 아니라 공영 방송 시스템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봉 1억 프레임은 공영 방송을 게토화하겠다는 구조 조정 신호탄이 아닐까?”, “편파 방송 프레임은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갈등 구조에서 권력을 쥔 지형에 유리한 방송, 그리하여 정치권력을 쥔 자가 공정하다고 인식하는 방송으로 유도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 방송 종사자들이 이 위기를 지혜롭게 넘길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쉽지 않다. 공영 방송을 둘러싼 학계나 시민 사회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격해지는 이념 간 갈등, 서로의 서로를 향한 혐오와 조롱과 비난의 언어, 파편화된 이해관계, 점점 더 엷어지는 공동체주의 등 한국 사회의 문제는 공영 방송을 둘러싼 동심원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공영 방송을 둘러싼 내부의 무력감과 외부의 냉소다. 그래서 KBS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참 지루하고도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목에 탁 걸리는 게 있다. 공영 방송 시스템이 무력화되면 뭐가 좋아지고, 누가 이익을 얻는 걸까?

우리는 기본적으로 공영 방송 시스템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유명무실한 것보다 제대로 기능하는 게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 현실에서 뭘 해야 할까?

사실 잘 모르겠다. 모를 때는 일단 싸움터의 공간, 애증의 공간 KBS를 제대로 관찰해 보는 게 필요하다. 가장 솔직한 건 돈이다. 경영의 관점에서 10년 정도 KBS를 관찰하면, 어쩌면 뻔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대안들을 건져 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지금부터 이 장에서 하게 될 이야기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변하지 않는 숫자 1조 5000억

지난 10년 KBS 예산서, 결산서를 들추다 보면 자주 만나는 숫자가 있다. 1조 5000억.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0년간 KBS의 연간 예산서와 결산서에 나와 있는 숫자는 늘 신기하게도 1조 5000억 원에 수렴한다. 비용과 수익도 1조 5000억 원, 목표치인 예산과 결과치인 결산도 1조 5000억 원. 놀랍지 않은가?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 모바일, 인터넷, IPTV, OTT 등 숨 가쁘게 변화해 온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감안할 때 이 고정된 숫자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KBS를 따라다니는 숫자는 ‘1조 5000억’을 공전하고 있다.
1조 5000억의 내면을 살피기 전에 그사이 KBS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살펴보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돈의 관점에서 주변을 보면 일단 국내 총생산량 GDP이 보인다. GDP는 실질적으로 지난 10년 사이 26퍼센트나 증가했다(실질 GDP: 2013년 1563조 → 2022년 1969조). 그사이 소비자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10년 사이 16퍼센트 증가했다(소비자 물가 지수: 2013년 93.0 → 2022년 107.7). KBS가 1조 5000억이라는 숫자에 멈춰 있는 사이, 한국의 실질 경제 성장률 26퍼센트에 물가 상승률 16퍼센트를 합치면 돈의 세계는 거의 42퍼센트나 앞으로 나아갔다.[1]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10년, 1조 5000억 원에 묶여 있는 KBS 살림살이 규모는 알고 보면 상당한 퇴보를 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공영 방송을 둘러싼 미디어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시계를 좀 더 과거로 돌려 2010년의 풍경을 보면, 디지털의 선두 주자 네이버, 유료 방송의 선두 주자 CJ ENM, 그리고 공영 방송의 선두 주자 KBS의 총수익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네이버 1조 8000억 원, CJ ENM 1조 2000억 원, KBS 1조 4000억 원. 그런데 2022년 현재는? 네이버는 2010년 대비 다섯 배 이상 증가한 8조 2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CJ ENM 역시 2010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4조 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물며 KBS와 함께 올드 미디어로 분류되곤 하는 지상파 사업자 SBS도 성장의 스케일은 다르지만 2010년 대비 66퍼센트 증가한 1조 2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사이 한국 시장에 진입한 OTT 사업자 넷플릭스도 한국에서만 2022년에 773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9년(1858억 원) 대비 네 배 이상의 규모다. 이렇게 지난 10여 년간 유료 방송, 온라인 인터넷, OTT, 그리고 지상파 사업자까지 모두 성장세를 보이는 국면에서 KBS는 1조 5000억 원 주변을 오가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조 5000억이라는 숫자도 위태로워 보인다. 조금씩 조금씩 수입도, 비용도 1조 5000억이라는 숫자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을 두 국면으로 나누어 전반전 5년과 후반전 5년의 수입과 비용을 비교해 보자. 2018년에서 2022년까지의 연평균 총수입은 1조 4811억 원으로, 전반전(2013~2017년)에 비해 670억 원 정도 떨어졌다. 이에 맞물려 총비용 역시 1조 4751억 원으로, 전반전에 비해 540억 원 정도 떨어졌다. 1조 5000억을 버티지 못하고 수입도 비용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공영 방송 위기의 근거, 수입


이제 수입과 비용, 그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겠다. 우선 수입이다.
KBS의 수익은 크게 광고, 수신료, 기타 수익으로 구분된다. 일단 광고를 보면 2012년 6236억 원으로 피크를 찍은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2020년 2319억 원까지 떨어진다. 2012년까지는 6000억 원대 내외, 2013~2015년은 5000억 원대, 2016~2018년은 3000~4000억 원대, 2019년 이후는 2000억 원대의 광고 수익을 보인다. 지난 10년간 부침은 있었지만 매년 평균 315억 원씩 광고 수익이 줄어들었다.

이는 종합 편성 채널의 개국, OTT의 등장, 모바일을 포함해 TV를 넘어선 디지털 미디어의 폭발 등 급격한 기술 발전에 힘입은 미디어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급변하는 환경에 부합하는 미디어 정책을 펼치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지상파 방송만 있었던 독과점적 시대의 방송법을 기반으로 공영 방송 규제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KBS 역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와 혁신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는가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음으로 볼 것은 수신료다. 수신료 수익은 1인 가구 증가로 2013년 5961억 원에서 2022년 6934억 원으로, 지난 10년간 약 1000억 원 정도의 매출이 증가했다. 연평균 100억 원 수준의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타 수익은 콘텐츠 판매 유통 수익 등의 성장으로 2013년 3818억 원에서 2022년 5729억 원으로, 지난 10년간 약 2000억 원 정도 매출이 증가했다. 연평균으로 환원하면 매년 평균 200억 원 수준의 성장을 보였다.

정리를 해보면 이렇다. KBS는 광고 수익의 급감(2013년 5794억 원 → 2022년 2642억 원, 연평균 315억 원씩 감소)을 수신료와 기타 수익(수신료 연평균 100억 원 + 기타 수익 연평균 200억 원씩 상승)으로 보전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점점 더 중요해지는 수신료의 가치

같은 1조 5000억 원이라도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면서, 무엇보다 수신료가 정말 소중한 재원이 되었다. 2012년만 하더라도 전체 재원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40퍼센트, 수신료가 37퍼센트, 기타 수익이 32퍼센트였다. 2022년 현재는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8퍼센트, 기타 수익이 40퍼센트, 광고는 18퍼센트로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었다.

수익 구조의 변동은 자연스럽게 공적 책무 이슈를 부각한다. KBS가 수행하는 서비스를 통해 얻는 수익의 성격이 달라지고, 공적 재원으로서 수신료의 비중이 커지면 서비스의 성격에 대한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타 수익이 더 이상 기타가 아닌 상황

둘째, ‘기타 수익’을 더 이상 ‘기타’로 취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원래 기타는 조연도 아니고 단역인데, 단역 배우가 주인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타 수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콘텐츠 판매 수익의 증가다. 2010년 1025억 원, 2013년 2009억 원, 2017년 2700억 원, 2020년 3326억 원, 2022년 3872억 원. 꾸준하고 성실하고 우직하게, 콘텐츠 판매 수익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료 방송 플랫폼으로부터 받는 재송신 대가의 증가, 유튜브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공급 확대, OTT로부터의 투자 확대 등이 이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또 하나 기타 수익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사업 외 수익이다. 자산 매각을 통해 2019년 945억 원, 2020년 720억 원의 수입을 달성했다. 2019~2020년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지상파 방송 광고 시장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방송을 통한 수익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국면에서 자산 매각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공영성 vs. 상업성, 5:5

지난 10년간 수신료 수익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광고 수익이 꾸준하게 줄어들면서 KBS 방송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재원의 성격과 비중이 달라졌다. 연도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2010년의 경우, 수신료 수익 5689억 원, 광고와 콘텐츠 판매 수익을 합친 금액이 6912억 원으로 공적 재원 45퍼센트, 상업적 재원 55퍼센트의 비중이었다. 한마디로 예능, 드라마 등을 통한 상업적 성공이 공영 방송 재원에 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 비중이 수신료 수익의 점진적 상승과 광고 수익의 점진적 하락으로 조금씩 변동하기 시작한다. 2017년에는 공적 재원 50퍼센트, 상업적 재원 50퍼센트의 비중이 된다. 이후 상황은 역전되어 상업적 재원보다 공적 재원의 비중이 증가하는데, 2022년의 경우 공적 재원 52퍼센트, 상업적 재원 48퍼센트의 수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업적 재원보다 공적 재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추이적 특징만은 아니다. 오히려 위 표에서 더 유념해서 봐야 할 것은, 편차는 있지만 KBS의 공적 재원과 상업적 재원 비중이 5:5라는 사실이다.

한국 공영 방송 서비스는 오랜 시간 공적 재원과 상업적 재원 비중이 균형을 맞추며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KBS가 운영하는 채널, 플랫폼, 콘텐츠의 성격을 규정짓는 물적 토대가 된다. KBS는 뉴스나 고비용 다큐멘터리 등 공적인 서비스만을 선보일 수 없는 재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상업 방송처럼 예능이나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재원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이후, 현재 예상되는 것처럼 공적 재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2] 후술하겠지만 당장은 상업적 재원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상업적 콘텐츠야말로 제작비 투자가 담보되어야 그에 비례하여 가능성이 열리는데, 투자할 수 있는 제작비가 축소되면서 공적 영역뿐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 등 오락 콘텐츠의 질 역시 훨씬 더 저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앞서 강조했던 것처럼 지난 10년간 있었던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 미디어의 진화 및 성장과 무관하게 KBS는 1조 5000억이라는 숫자에 갇혀 왔다. 공적 재원이든 상업적 재원이든 어느 한 영역이 삐걱거리면 KBS는 존재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시점에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의 목표가 공영 방송다운 공영 방송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공영 방송을 지우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논란의 핵심, 비용


지금부터는 KBS가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지, 비용 부분의 특징을 살펴본다. 1조 5000억에 고정된 숫자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한다. 수신료 분리 징수 논쟁과 함께 KBS의 공적 책무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는데, 공적 서비스의 강화도 일단 투자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경직된 비용 구조 때문이다.

비용 부분은 크게 방송 제작비를 포함한 사업 경비, 인건비, 감가상각비, 사업 외 비용 및 법인세로 크게 구분된다. 먼저 방송사의 핵심인 방송 제작비를 보자.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방송 제작비 현황과 총비용 대비 제작비 투자 비중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 년간 KBS가 집행한 총비용에서 방송 제작비 비중은 40퍼센트 내외를 차지하며, 규모로는 2012년 이후 6000억 원대 내외로 고정되어 있다. 물론 연도별로 보면 편차가 있다. 가령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비상 긴축 조치 시행으로 5550억 원 수준까지 제작비가 떨어졌다.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몰려 있는 해에는 중계권료 상승으로 제작비가 증가하기도 하지만(2018년 6478억 원, 2022년 6744억 원), 전반적으로 방송 제작비는 늘 6000억 원 내외다.

당연히 이상한 일이다. 지난 10여 년 새 물가도 오르고 GDP도 상승했으며, 출연료, 작가료, 연출비, 스태프 인건비 등등 제작 리소스 단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 무관하게 KBS의 방송 제작비는 ‘언제 어디서든’ 6000억 원 플러스마이너스 알파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실제 콘텐츠 제작에 투자되는 비용, 4800억 원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제작비의 내면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KBS의 방송 제작비에는 TV 제작, 라디오 제작뿐 아니라 뉴스, 스포츠, DMB·멀티미디어(홈페이지 등), 디지털 제작비와 연구 개발비, 이외에도 방송 제작 공통 비용(방송 회선, 전속 단체 비용, 파견 용역 등)이 포함되어 있다.
KBS 방송 제작비로 포함된 세부 항목들의 집행 실적을 보자. 지난 10년, KBS가 연구 개발비와 기타 부문(방송 제작 공통부분)을 빼고 TV, 라디오, 보도, 스포츠, 멀티미디어, DMB, 디지털까지 실제 KBS의 채널, 콘텐츠, 플랫폼 방송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4800억 원 수준이다(전체 비용 대비 비중 32퍼센트). TV, 라디오뿐 아니라 인터넷,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까지 모두 포함하여 KBS가 콘텐츠에 투자하는 제작비 규모다.

좀 더 들어가면 TV(‘KBS 월드’ 채널 포함)의 연평균 제작비가 3554억 원(총비용 대비 23퍼센트 수준)이고, 라디오의 연평균 제작비는 286억 원(총비용 대비 2퍼센트 수준), 보도(라디오 뉴스 포함)의 연평균 제작비는 397억 원(총비용의 3퍼센트 수준)이다. 연도별로 편차는 다소 있지만, 지난 10년간 TV와 라디오, 보도에 투자되는 제작비 규모는 대동소이하다.

공영 방송으로서 KBS의 본업은 콘텐츠 제작이다. 콘텐츠를 통해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KBS에 대한 칭찬과 비판의 근저에도 콘텐츠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전체 비용 1조 5000억 원 중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규모가 4800억 원, 32퍼센트 수준이라면 이는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는 수치다.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액이 2020년 3300억 원, 2021년 5000억 원, 2022년 8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3] 넷플릭스가 2022년 한국 콘텐츠, 좀 더 정확히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에 투자한 금액이 한 해 8000억 원 수준인데, KBS는 4800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가지고 하루 종일 방송되는 뉴스, 다큐멘터리, 드라마, 예능, 시사, 라디오를 만들고, 지역국도 운영하며, 유튜브 및 디지털 콘텐츠도 제작해야 한다. 상대가 될까? 될 리가 없다.

어려우면 손대는 제작비

공영 방송의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2023년 KBS는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위기의 국면 때마다 KBS가 내세운 첫 번째 전략은 제작비 절감이었다.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통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서비스에 투자하는 제작비를 절감하며 위기 국면에 대응해 왔던 것이다.
위의 그림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KBS의 총비용과 방송 제작비가 전년 대비 감소했을 때의 주요 수치를 보여 준다. 지난 10년 중 한국 사회의 경제적 침체, 광고 시장의 급격한 냉각, 코로나19 등 외부 변수들에 의해 비상 긴축이 필요했던 시기는 2013년, 2016년, 2019년, 그리고 2020년이었다. 2013년 비상 긴축 시 방송 제작비는 전년 대비 283억 원 감소했고, 2016년 긴축 예산 편성 시 306억 원, 2019년 비상 경영 계획 시 520억 원, 2020년 비상 긴축 조치 시행 시 412억 원이 줄었다.

특징적인 것은 2016년을 제외하고 위기 국면을 타개하는 전략으로 KBS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 방송 제작비 삭감이었다는 사실이다. 2013년 총비용 삭감 규모 213억 원 중 283억 원이 제작비 삭감이었으며, 2019년 총비용 삭감 규모 529억 원 중 520억 원이 제작비 삭감이었다. 2020년에도 총비용 삭감 규모 535억 원 중 412억 원이 제작비 삭감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KBS의 총 콘텐츠 제작비는 평균 4000억 원에 불과하고, 전체 비용에서 방송 제작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0퍼센트가 안 됨에도 제작비 삭감이 위기 국면에서 KBS가 선택한 길이었다.

경직성 경비, 인건비의 과도함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KBS의 경우, 재정적 위기 국면에서 방송 제작비 절감은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이유는 고정 비용인 인건비에 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인건비 총액은 5200억 원 내외로 거의 변화가 없고, 연도별 총비용의 변화에 따라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만 33~36퍼센트 사이를 오간다. 유의미하게 인건비에서 변화가 보이는 해는 2022년이다. 2022년의 경우 정년퇴직자가 예년에 비해 223명으로 상당히 많았고, 명예퇴직 시행 등에 따라 중도 퇴직자가 105명 증가한 것이 변화의 이유였다.[4] 2022년 인건비가 5200억 원대에서 4800억 원대로 줄고, 그 결과 인건비 비중도 2021년 36퍼센트에서 2022년 31퍼센트로 줄었다.

그럼에도 인건비는 전체 비용의 30퍼센트를 넘는다. 인건비는 KBS가 외부로부터 비판받는 핵심 이유이면서, 동시에 KBS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다.[5]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직무를 줄여야 한다. 문제는 현재 KBS에 부여된 공적 책무의 수준과 범위다. KBS는 2개의 TV 채널과 2개의 위성 방송 채널(KBS 월드, KBS 코리아), 7개의 라디오 채널과 4개의 DMB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9개의 지역 총국과 9개의 지역국 및 11개의 해외 지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KBS 교향악단과 KBS 국악관현악단 등 다양한 시청자 부대사업도 수행 중이다. 산간 및 도서・벽지의 난시청 해소 업무, 디지털 서비스 업무, 재난 방송 등도 KBS가 수행해야 하는 공적 책무다.

방송법과 KBS 정관은 KBS의 공적 책무 현황을 명시하고 있다. 방송법에는 총 11개의 업무가, 정관에는 총 6개의 대유형에 24개의 업무가 부여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KBS가 스스로 선언하고 실천하는 공적 책무 확대 계획도 매년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KBS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는 지상파 TV에서 위성 방송, DMB, 유튜브, OTT까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늘어나고, 이전보다 잦아지는 재난・재해에 대비하는 재난 방송에 이르기까지 계속 늘어난다. 동시에 물가도, 인건비도 오르고 모든 단가가 올랐다. 이 모든 걸 10년 전과 동일하게 1조 5000억 원 규모 내에서 해내야 한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러나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걸 조금씩 다 해야 하니 직무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경직성 경비로서 인건비 축소가 말만큼 쉽지 않다. 재정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방송 제작비 절감을 가장 먼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KBS의 공적 책무 근거들

아래 나열된 방송법과 KBS 정관 이외에도 연간 경영 목표, 방송 기본 계획 등을 통해 KBS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실천하는 공적 책무 확대 계획이 있다.

방송법 (제54조) 업무
① 공사는 다음 각호의 업무를 행한다.
1. 라디오방송의 실시
2. 텔레비전방송의 실시
3. 위성방송등 새로운 방송매체를 통한 방송의 실시
4. 방송시설의 설치・운영 및 관리
5. 국가에 필요한 대외방송(국제친선 및 이해증진과 문화・경제교류 등을 목적으로 하는 放送)과 사회교육방송(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대상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증진할 목적으로 하는 放送)의 실시
6.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의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행하는 방송의 송신 지원
7. 시청자 불만처리와 시청자 보호를 위한 기구의 설치 및 운영
8. 전속단체의 운영・관리
9. 방송문화행사의 수행 및 방송문화의 국제교류
10. 방송에 관한 조사・연구 및 발전
11. 제1호부터 제10호까지의 업무에 부대되는 수익사업

KBS 정관 (총 6개의 대유형, 24개의 업무) 제29조(업무)
① 공사는 다음 각호의 업무를 행한다.
1. 방송실시
• 라디오 방송
• 텔레비전 방송
• 위성방송 등 새로운 방송매체를 통한 방송
• 대외방송
• 사회교육방송
• 한국교육방송공사가 행하는 방송의 송신지원
2. 방송시설의 설치・운영 및 관리
3. 시청자불만처리와 시청자보호를 위한 기구의 설치운영
4. 조사 연구
• 방송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조사연구
• 방송기술 향상을 위한 개발연구
• 방송경영 발전을 위한 조사연구
• 방송문화 창달을 위한 조사연구
5. 부대업무
• 방송제작상 필요한 전속단체의 유지 및 육성
• KBS 교향악단의 유지 및 육성
• KBS 국악관현악단의 유지 및 육성
• 방송에 필요한 행사및 사업의 주최, 주관 또는 후원
• 출판 및 음반, 테입의 제작 배포업무
•시청자 서비스를 위한 업무
• 방송의 국제교류에 관한 업무
• 광고방송 업무
• 대외방송또는 대외방송프로그램의 지원에 관한 사항
• 자회사의 유지 및 육성
• 방송문화 향상을 위한 사업과 사원복리 후생단체에 대한 지도 육성
6. 제1호 내지 제5호의 업무에 부대되는 수익사업


 

만성 적자 KBS, 파업 때만 흑자였다?


수행해야 하는 공적 책무는 점점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수신료, 광고, 프로그램 판매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1조 5000억 원에 머물러 있다 보니 KBS의 영업 이익은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지난 10년간 KBS의 영업 이익은 2016~2017년을 제외하곤 늘 손실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길환영(2012년 11월~2014년 6월), 조대현(2014년 6월~2015년 11월) 사장 체제에서 영업 이익은 최소 -211억 원(2015년)에서 최대 -455억 원(2014년)까지 적자 구조를 면치 못했는데, 당시 총비용은 1조 5500억 원을 상회했다.

이 적자 구조에서 탈피한 것이 2016년과 2017년이었다. 2015년 11월, 고대영 사장 취임 후 강도 높은 긴축 예산 편성이 이뤄졌다. 매출 원가와 판매 관리비 등 비용 절감이 전사적으로 실시되면서 총비용이 2011년 이전 수준(2015년 1조 5868억 원 → 2016년 1조 5087억 원 → 2017년 1조 4374억 원)으로 떨어졌고, 그 결과 2년 연속 영업 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2017년의 경우 영업 이익 흑자 폭이 200억 원까지 증대되는데, 여기에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된 공영 방송 파업, 이에 따른 인건비와 프로그램 제작비 축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공영 방송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공적 책무 수행을 중단했더니 재원 구조가 좋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2017년 파업이 끝나고 새롭게 들어선 양승동 사장(2018년 2월 취임) 체제에서 KBS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와 조직 문화 쇄신을 위해 신규 인력 충원, 제작비 증대 등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영업 손익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2018년 투자 확대에 따른 영업 손익 적자 폭이 커지고(-585억 원), 이 흐름이 2019년까지 이어지자 KBS는 2019년 여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들어갔다.[6] 그리고 2019년이 끝날 시점 총비용을 다시 2017년 수준인 1조 4550억 원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2017년과 달리 영업 이익의 적자 폭이 줄어들거나 흑자로 전환하지 못했고, 2019년의 KBS 영업 이익은 지난 10년 사이 최대 적자 규모인 -759억 원을 기록한다. 이후 2021년 새로 취임한 김의철 사장(2021년 12월 취임) 체제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TV 광고 시장이 살아나면서 매출이 다소 상승했지만, 영업 이익 적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만성 적자 KBS에 필요한 것

지난 10년, 다섯 명의 사장이 KBS를 거쳐 갔다. 그사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감안하면 KBS가 거의 예외 없이 매년 영업 손실을 보였다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정치 병행적인 지배 구조만의 문제도, 방만 경영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파업으로 KBS가 공적 책무의 수행을 멈추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던 2017년의 경영 실적이 가장 좋았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공영 방송이 어떤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는 재원 규모와 조달에 달려 있다. 공적 재원과 상업적 활동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보다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많다면 재원을 확대하거나 공적 책무의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 공영 방송이 어떠한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도출하고, 그와 같은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하며,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물론 공영 방송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비용 집행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파업으로 KBS가 공적 책무의 수행을 멈추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던 2017년의 경영 실적이 가장 좋았다이러한 논의 없이 수신료 분리 징수부터 일단 시행하고 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간 있어 왔던 수신료를 둘러싼 담론 투쟁의 전선을 살펴봐야 한다.
[1]

연도별 경제 성장률의 측정은 명목 GDP가 아니라 시장 가격을 2015년 기준으로 동일하게 적용한 실질 GDP로 계산한다. 이는 물가 변동에 따른 연도별 변동성을 통제하고, 순수하게 경제 성장의 증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

노지민, 〈8월 TV수신료 22억 감소… 분리징수 여파 본격화〉, 《미디어오늘》, 2023.09.11.

실제로, 2023년 7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8월분 TV수신료 총수입액은 전년 동기 580억 원대에서 약 21억 7000만 원, 약 3.7퍼센트 감소한 560억 원대로 집계됐다. 수신료 수입 감소분에 가구당 월 수신료인 2500원을 단순 대입하면 약 86만 8000가구가 수신료를 내지 않은 셈이다.

[3]

고성욱, 〈넷플릭스, 지난해 8000억 투자했는데 4년 3조 3000억 투자 유치?〉, 《미디어스》, 2023. 4. 25.

[4]

KBS한국방송, 〈2022 사업연도 경영평가보고서〉, 2023. 6., 111쪽.

[5]

KBS한국방송, 〈2022 사업연도 경영평가보고서〉, 2023. 6.
위 문헌에 따르면, 21년 기준 MBC의 총비용 대비 인건비 비중은 26퍼센트(서울 26퍼센트, 지역+계열사 포함 33퍼센트), SBS의 인건비 비중은 20퍼센트(서울 20퍼센트, 계열사 포함 29퍼센트)다. KBS의 경우 여타 지상파 채널에 비해 TV 기준 2배, 라디오 기준 3배 이상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재난 방송, 난시청 해소, 지역 방송 등 수행해야 할 공적 책무 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타사와의 인건비 비중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해외 공영 방송사의 경우도 국가마다 공적 책무의 성격이 달라 2021년 기준 인건비 기준이 ARD(독일) 34퍼센트, BBC(영국) 27퍼센트, NHK(일본) 24퍼센트 등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통념상 인건비 비중이 30퍼센트를 넘는 것은 KBS가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되는 주된 이유다.

[6]

최영주, 〈1000억 적자 KBS, 프로그램 폐지·축소 등 ‘비상경영’〉, 《CBS노컷뉴스》, 2019.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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