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장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대이직 시대의 주인공과, 이들이 이직을 택하게 된 이유를 알아봤다. 이번 장에서는 조금 더 시각을 넓혀 대이직 시대가 탄생하게 된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보려 한다.
대이직 시대의 시작
개발자 확보 전쟁이 쏘아 올린 공
대이직 시대의 시작에는 팬데믹 이후 찾아온 제2 벤처 붐[1]이 있었다. IT 스타트업에 자본이 몰렸고, 매일 어떤 기업이 시드(seed) 투자 혹은 시리즈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했다. 실제 ‘네이버 트렌드’에서 ‘스타트업 투자’ 검색량을 살펴봤을 때 2021년부터 그 수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2 벤처 붐을 IT 스타트업이 주도한 만큼, IT 업계의 핵심 인재인 개발자 채용 시장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존 IT 시장을 주도하던 ‘네이버’와 ‘카카오’의 인재 영입 전쟁에 스타트업들이 뛰어든 것이다. 든든한 투자금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은 개발자를 끌어오기 위해 앞다투어 연봉을 인상했다. 가령 ‘비바리퍼블리카(토스)’는 ‘전 직장 연봉 대비 최대 50퍼센트 인상 및 스톡옵션 1억 원 부여’를, ‘당근마켓’은 ‘개발자 최저 연봉 5000만 원’을, ‘직방’은 ‘개발자 초봉 6000만 원’에 더해 경력자 대상의 입사 인센티브인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를 최대 1억 원까지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연봉과 성과급 인상을 단행했다.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IT 기업들을 통칭하는 신조어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도 이 시기에 생겨났으며,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고임금을 받는 개발자들의 인증이 잇따랐다.
한국 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제2 벤처 붐이 개발자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인력의 임금 상승을 동반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투자금을 추가 성장을 위한 우수 인력의 확보와 유지에 주로 사용한다고 본 것이다. 해당 협회가 매년 공표하는 〈SW 인력 평균 임금〉에 따르면 2019~2021년 동안의 소프트웨어 인력 임금의 평균 상승률은 10퍼센트에 달한다.[2]
IT 업계에서 시작된 개발자 연봉 인상 릴레이는 금융, 증권, 유통 등 전통적인 산업군으로도 이어졌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산업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이들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도 개발자 영입이 간절해진 것이다. 고연봉을 자랑하던 금융권도 개발 직군의 기본급을 타 직군 대비 적게는 100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 이상 올려 주며 개발자를 모셔 간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이직 열풍에 부채질한 비개발자들
개발자 연봉이 빠르게 인상되면서 비개발 직군의 연봉도 함께 올라갔다. 개발자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IT 업계로 옮겨가는 직장인의 행렬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원티드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실제로 비개발 직군의 직장인들 또한 이직 시장에 뛰어듦으로써 개발자와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연봉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 직군과 더불어 이직자가 많았던 경영·비즈니스, 디자인, 마케팅·광고 등 네 개 직군 모두 불과 3년 만에 평균 연봉의 앞자리가 달라졌다. 같은 시기 직군별 평균 연봉 상승률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연봉 인상률은 오히려 개발 직군(4.83퍼센트)에 비해 경영·비즈니스(5.35퍼센트), 마케팅·광고 직군(5.77퍼센트)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투자금은 물론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한 제2 벤처 붐을 맞이한 기업들은 더 큰 성장을 위해 추가 인력 채용에 나섰고, 이에 따라 비개발 직군의 이직 시장도 활황을 맞았다. IT 업계로 빠져나간 구성원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여타 업계 또한 채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바야흐로 직군을 가릴 것 없이 이직이 당연해진 대이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전히 이직은 계속된다
그러나 꿈 같던 시간도 잠시, 제2 벤처 붐의 정점이 지나고 현재 스타트업들은 투자 빙하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대이직 시대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제2 벤처 붐이 대이직 시대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이직 시대는 이미 잠깐의 유행을 넘어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이직을 바라보는 방식에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옛말이 되어 버린 평생직장
한 직장에 최대한 오랫동안 다니며 정년을 채우는 것이 직장인 대부분의 목표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직장인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잡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현재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조사한 결과, 80퍼센트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3]
과거 직장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제때 승진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회사는 직원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당장 몇 년 후에 내 자리가 남아 있을지도 미지수고, 자신이 속한 산업이나 직군이 언제까지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다. 자연스레 현재 몸담은 조직에 미래를 맡기기보다는 여러 직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능력을 키워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결국 한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 이상으로 ‘커리어패스를 통해 어떤 역량을 쌓고 얼마나 성장하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직자가 곧 능력자인 시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이직하는 사람을 ‘부적응자’ 혹은 ‘끈기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직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회사의 선택을 받았으며 경험의 폭도 넓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짧은 주기로 이직을 반복하며 단기간에 연봉을 크게 올리거나 성공적인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사례가 늘면서, 이직은 도피가 아닌 도약으로 여겨지게 됐다.
이직과 직결되는 퇴사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2030 직장인 사이에서는 누군가의 퇴사를 축하하고, 심지어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4]에 따르면 연령과 직급이 낮을수록 주변인이나 직장 동료의 퇴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KBS의 조사 결과, 최근 2년 이내 자발적 퇴사를 경험한 2030 응답자 중 70퍼센트 이상이 퇴사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5] 단, ‘퇴사 이후 특별한 계획이 없더라도 퇴사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즉 이직이나 학업, 창업 등 다음 스텝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전제하에 퇴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퇴사 또한 이직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성장을 위한 이직에서 생존을 위한 이직으로
이처럼 스스로 앞날을 개척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직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대이직 시대의 한편에는 생존을 위해 이직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 빙하기가 오면서 많은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일부 직장인들은 더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된 직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22년까지만 해도 당장 연봉을 많이 준다면 대기업에서 초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2023년에 들어서는 이직할 회사의 수익 구조와 안정성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원티드의 〈직장인 유형 테스트〉에서도 응답자 중 상당수가 선호하는 직장에 관한 수식어로 ‘도전’, ‘최초’, ‘세상에 없던’ 등 대신 ‘유명한’, ‘안정적인’ 등을 선택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채용 플랫폼에서도 구직자의 니즈(needs)를 반영해 채용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원티드에서는 100억 원 이상 투자를 받은 55개 기업의 채용 공고를 모아 ‘100억 투자 유치 기업 전용관’을 운영했다. 구직자들이 최근 대규모 투자를 받고 우수 인력을 확보하려는 기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전용관 참여 기업의 지원자 수가 미참여 기업 대비 2.8배 높게 나타났다.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회사를 선호하는 구직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변동성이 큰 경제 상황과 일하는 문화 및 이직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변화는 대이직 시대라는 흐름을 낳았다. 구직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쫓기 시작한 이상, 이 커다란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INSIGHT: 대이직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는 법
글 이형근 (온오프믹스 인사팀장, 《나는 인사팀 직원입니다》 저자)
채용 업무만 10년째, 한결같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껏 이렇게 당황스러웠던 적은 없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니.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한 기업의, 한 담당자의 문제 때문인 것일까?
시작은 개발자 채용이었다
구인난의 시작은 개발자 채용이었다. 팬데믹의 시작을 전후해 채용 시장에서 경력직 개발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자연스럽게 개발 인력의 폭발적인 인건비 상승이 이어졌다.
부족한 개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자금이 풍부한 기업들은 높은 연봉과 화려한 복지 제도로 시장의 경력직들을 빨아들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고 복지가 빈약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유니콘에 대항하지 못하고 부족한 인력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신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신입도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경력직에서 시작된 인건비 상승은 신입으로까지 이어졌고, 구직자의 눈높이는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어느새 개발자뿐 아니라 기획자, PM(Product Manager), PO(Product Owner) 등 다양한 직무로 구인난이 확산했다. 기업들은 구직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연봉뿐 아니라 재택근무부터 시간 단위 연차 제도, 리프레시 휴가, 근속 포상 등의 복지 혜택을 늘려 나갔다.
그러던 중, 반전이 왔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시장에 풀렸던 현금이 전 세계적인 인건비 상승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2022년부터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시장에 풀렸던 현금은 빠르게 회수되었고 투자 시장은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많은 IT 기업이 구조 조정을 단행했으며, 고임금 경력직 개발자들이 채용 시장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발자 채용에 애를 먹던 중소 규모의 기업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촉망받던 IT 기업들의 구조 조정 소식이나 해외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레이오프(lay-off)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대감은 커졌다. 짧은 기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랐던 인건비도 어느 정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드디어 그토록 갈구하던 인력을 구하기도 조금은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자의 몸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 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평균 임금은 2021년에는 전년 대비 2.6퍼센트[6], 2022년에는 6.9퍼센트 상승했다.[7] 여전히 주변에서는 개발자를 구하지 못한 채용 담당자들의 한숨이 들려오고, 구직자들의 기대 연봉은 작은 기업에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예견되는 인력난, 계속되는 도전
비단 개발 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에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2030년까지 320만 명의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8] 낮은 출산율로 인해 경제 인구로 편입되는 인구보다 노령으로 인해 은퇴하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2023년을 기점으로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제 활동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낮은 출산율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로 인한 경제 인구 감소는 ‘실업률 감소-임금 인상-인건비 상승-물가 상승-임금 인상’이라는 인플레이션 나선을 낳았다. 머지않아 이와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번 높아진 인건비는 구직자의 기대 임금을 이미 높여 놓았고 인력풀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구직자의 기대 임금을 충족시켜 주는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상황이 어려운 기업들은 계속해서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도전.
직장인들의 생존 공식이 달라졌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보더라도, 기업들이 새로운 채용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은 분명하다. 직장인들의 생존 공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회사의 정년은 기껏해야 60에서 65세다. 기대 수명이 120세까지 늘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현세대에게 인생 2막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그 이후의 먹고살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가 정해 주는 업무를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따라가면 정년이 보장되고 노후에도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더는 그런 안정적인 루트가 없는 상황에서 개개인은 모두 1인 기업이자 1인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그에 맞게 ‘나’라는 기업의 CEO로서 필요한 성장 로드맵을 능동적으로 그려 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가 지시하는 업무를 무조건 수행하기보다는, 내가 경험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며 이 역할이 자신에게 맞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갑을 관계가 아닌 파트너 관계로
결국 대이직 시대에 살아남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회사와 근로자 간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회사는 가족과 같은 일종의 집단 공동체 개념이 강했고, 그 속에서 대표나 직장 상사는 일종의 위계를 가진 친척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MZ세대가 경제 활동의 주축이 되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회사와 근로자 관계는 더 이상 가족적이지 않다. 오히려 계약적 파트너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채용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가 ‘갑’인 채용 시장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고, 확장적 가족의 형태를 가진 조직 속에서 성장했다. 평가자가 된 지금, 그들은 어쩌면 회사에 찾아온 지원자들을 예전의 경험에 기반해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MZ세대는 도통 다르다며, 제대로 된 사람을 뽑기 어렵다는 말이 많이 들려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이 대세임을, 또한 사회와 경제의 구조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인구 감소로 인력풀은 줄어들고 구직자들은 꼭 이 회사가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으며 회사에서의 성공보다 장기적인 인생에서의 성공에 더 목마르다. 기업들은 구직자를 ‘을’이 아닌, 서로 니즈를 맞춰 가야 할 전략적 파트너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이직 시대에 맞는 채용 전략은 이 파트너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회사가 그들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에서 출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