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자본주의
4화

주목을 가치로 변환하는 알고리즘

주목 경제와 인지의 로지스틱스


“영상을 재밌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까지!”

우리가 유튜브에 접속해서 시간을 보내는 중 가장 많이 듣는 멘트일 것이다. 라디오 방송이나 TV 홈쇼핑을 즐겨 보는 사람들이 무심코 광고송을 흥얼거리듯이,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엄지 척 버튼과 구독을 누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뭔가를 ‘본다’, 혹은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가치를 생성하는 행위가 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어딘가에 시선을 주는 행위 자체를 상품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플랫폼-알고리즘은 가치 순환의 고립계다. 이 안에서 뭔가를 본다는 것은 곧 구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물질재 상품일 수도 있고, 브랜드 자아(branded self)가 만들어 낸 콘텐츠일 수도 있다. 전자는 직접적인 잉여가치로 전화되고 후자는 영향력 또는 평판 등의 자산으로 변환된다. 유튜브는 분당 500시간의 동영상이 업로드되고, 하루 평균 150억 회의 조회 수를 발생시키는 지구 최대 규모의 ‘보고, 떠올리는’ 플랫폼이다. 이 중 9할이 광고로 발생한 수익이며,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보다가 ‘문득’ 떠올리게 만든다. 더 많은 광고가 노출될수록, 더 많은 매출이 발생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생성될수록 상품 구매 페이지를 향하는 눈길도 많아진다. 즉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 수익을 더 창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플랫폼 안에 머물면서 뭔가를 계속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더 오래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더 많이 응시하도록 만드는 기계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기계의 본질은 인간의 작업을 수월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를 탐구해 온 마르크스와 노동가치론은 기계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가치는 오로지 인간의 노동이 동반되는 한에서,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 실제보다 더 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과정(다시 말해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구매해, 상품이 판매되는 가격보다 싼값으로 착취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알고리즘은 뭔가를 ‘보고, 떠올리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2장에서 살펴봤듯이 플랫폼들의 주 수익은 상품의 판매가 아닌 상품 판매를 매개하는 데서 발생한 지대이고, 상품 판매는 광고로 매개된다. 알고리즘은 광고가 선전하는 상품을 만들지도, 스스로 광고를 만들지도 않는다.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것은 바로 ‘주목(attention)’이다. 주목은 우리가 조건 반사로 응시한 뒤 뇌리에 떠올리는 인지의 과정을 추상화한 결과 그 자체로 상품이 된다. 과거의 기계들이 인간의 육체 동작을 증폭해 분업을 발생시켜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수단이었다면, 알고리즘은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 노동자를 고용하는 상품 판매자, 그리고 광고를 만드는 노동자, 광고를 만들어 파는 광고 판매자들 위에 올라타 소비자들을 연결해 주고, 가치로 환산된 ‘주목’을 생성해 그를 매개로 지대를 발생시키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광고를 시청하는 행위를 노동으로 보는 이론은 TV 프로그램의 전성시대인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자인 셧 잘리(Sut Jhally)와 빌 리반트(Bill Livant)에 따르면 TV 광고 시청은 미디어에 의해 생산·상품화되고, 광고주들에게 판매·유통되기 때문에, 주목은 곧 잉여가치의 맹아가 된다. 시청자는 자신에게 제공되는 무료 콘텐츠를 시청하고, 광고와 버무려진 시청 행위는 노동력처럼 구매된다. 그리고 미디어는 이 시청 시간을 제공한 무료 콘텐츠의 제작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광고주들에게 판매한다. 즉 광고 시청은 최저 임금 기준으로 책정되는 노동력의 가격처럼,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을 사회적 필요 시청 시간으로 환산해, ‘잉여 시청 시간’을 발생시키는 것이다.[1] 심심풀이로나 혹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광고를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은 미디어에 의해 포획되어, 광고 시청이라는 노동으로 전화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물론이거니와,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을 옹호하는 쪽에서도 비판받아 왔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기계들은 육체노동을 추상화하면서 임금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낸다. 컨베이어 벨트, 어셈블리 라인은 시간당 상품이 얼마나 생산되는지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얼마인지, 산 노동이 분당 몇 번의 동작이 투입되어야 하는지를 계산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간당 노동력의 가치가 얼마인지 정량화하는 과정, 노동의 추상화 과정이 있어야지만 실제 가치보다 싼 값의 임금을 노동자들에게 지불할 수 있다. 그 차액이 잉여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직조기, 방직기가 초기 자본주의의 기관으로서 잉여가치를 부로 집적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투여한 노동력의 실제 크기를 정량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어떤 재화가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추상적 인간 노동이 그 속에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가치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그것은 거기에 포함돼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시체, 즉 노동의 양으로 측정된다. (…) 개별 노동자의 상이한 노동력이 모두 균등한 인간 노동력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평균 노동력이라는 표준이 필요하며,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도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만이 소요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란 주어진 평균적인 사회적 생산 조건하에서 평균적인 숙련과 노동 강도로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데 요구되는 노동 시간이다.”[2]

마르크스가 인간의 노동력과 생산 수단이 결합해야만 상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본 이유는 기계류가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과 평균적인 숙련도를 산출해 산업 부문에 구조적으로 적용하는 힘을 생성하기 때문이었다. 기계는 일정하게 작동하면서 시간당 상품 생산량을 통해 노동력의 크기를 정확히 추상화할 수 있다. 이렇게 노동 가치의 측정으로 가격이 매겨진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됨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실현하는데, 상품으로서 판매되는 금액과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금액의 차액이 잉여가치가 된다. 광고 시청 시간이 잉여 시청 시간을 발생시킨다는 잘리와 리반트의 주장은 이 때문에 역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광고 시청 시간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기계는 없었다. TV는 분명 대량으로 광고를 유통하는 수단이었지만, 개인이 광고를 보는 시간당 얼마의 상품이 팔리는지 ‘사회적 필요 시청 시간’을 산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즉 ‘광고를 보는 노동’이 성립하기 위해 전제되어야만 하는 추상화의 단계, 생산 수단으로서의 기계류라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잘리와 리반트의 주장은 소수 의견으로 치부돼 왔다.

시간이 흘러 2000년대 초반, TV와 레거시 미디어의 왕국은 축소되고 본격적으로 플랫폼-알고리즘이 난립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잉여가치를 발생시키는 시청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는 조나단 벨러(Jonathan Beller)가 주장하는 ‘시네마적 생산 양식(cinematic mode of production)’이라는 관념적이고 미학적인 용어로 대체되기도 했다.[3] 미디어 기술 환경이 점점 콘텐츠를 매개해 주는 공급망이거나 공론장이길 넘어 스스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상품 미학을 개입시키고자 ‘주목’이라는 기호계를 동반시킨다는 것이다.

이제 청중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듯이 스스로의 지각으로부터 소외되는데, 주목 경제는 소외된 인간 지각을 스펙타클이라는 자본의 총체화된 이미지로 인수분해한 결과다. 벨러는 알고리즘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중간인 웨트웨어(wetware)로 규정하고, 이것이 인간 주목의 복잡성을 소비 습관, 경향, 라이프스타일 등의 범주로 모듈화해 가치화 과정에 삽입한다고 생각했다.[4] 그러나 벨러는 여전히 알고리즘이 가치를 추상화하는 기계라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알고리즘을 컴퓨팅이 아닌 시네마로부터 탈영토화된 스펙타클 시각 체계를 투영하는 미디어·TV·네트워크 전반의 작동 방식으로 다뤘다. 즉 2000년대 초중반의 주목 경제 이론은 여전히 알고리즘을 주체에 의해서 현시된 객체와 주체 간의 물화된 관계로 범주화했다. 이는 생산(직접적인 가치의 생산)이라기보다는 재생산(가치의 생산과 유통구조를 항구화하는 이데올로기 및 권력 관계)에 더 가까우며, 그렇기 때문에 ‘시네마적 생산 양식’이라는 미학적인 용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와 소셜 커머스의 추천·홍보 알고리즘, 유튜브와 거대 언어 모델에 이르기까지 알고리즘은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훨씬 진일보한 데다, 벨러의 생각과 달리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닌 ‘느끼고, 생각하고, 읽어 내는’ 모든 행위에 개입하게 됐다. 최근 정보 기술과 미디어 네트워크는 청중에게 콘텐츠를 판매해서 이윤을 내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들에게 제조된 청중(manufactured audience)을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만든다.[5] 알고리즘은 빅데이터라는 토양으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연산주의의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 미디어 공학자인 에드 핀(Ed Finn)의 표현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점점 특이점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언어· 로고스·기호를 이용해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 지능의 종언을 앞당기고 있다.[6] 알고리즘의 실행적 층위는 기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화의 해석적 층위와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즉 논리와 욕망을 하나로 묶고, 순수 수학과 비순수 인간성을 뒤섞는 것이 알고리즘이다.[7] 해석적 층위의 지지부진함은 난독증을 가져오지만, 알고리즘 층위의 장막은 블랙박스를 만든다. 비판에 부딪혔던 1980~1990년대의 잉여 시청 시간 이론과 2000년대의 주목 경제 이론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플랫폼-알고리즘 환경에서 하나의 실타래로 엮였다.

이제 알고리즘은 사회적 필요 시청 시간과 시네마적 생산 양식을 하나로 묶을 뿐 아니라 그것들의 시간당 기대 수익이 얼마인지를 계산한다. 유튜브가 대표적인 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들은 키워드 연관성과 해시태그 단위로 기존 문화적 층위에서의 기호계를 쪼갠 다음, 그것들에 기반해 영상을 추천해 준다. 그런 다음 이용자가 영상을 시청하는 가운데 광고를 몇 초 동안 봤는지를 계산하며, 영상의 시청 시작 시간과 시청 종료 시간의 통계를 바탕으로 추상화된 광고 수익 산출의 준거들을 적용시킨다. 그 결과 콘텐츠 생산자는 수수료의 40퍼센트를 뺀 광고 수익을, 그리고 이용자는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를 지불하거나 무심코 인터넷 쇼핑몰로 들어가 상품을 매개하는 비용으로 이 잉여가치 축적의 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알고리즘이 기존의 산업 자본주의처럼 임금으로 추상화하는 생산 수단으로 쓰이거나, 혹은 스펙터클의 편재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청중을 제조하길 넘어 ‘주목’을 제조해, 지대에 기반한 가치로 환원하길 지향한다. 미디어학자인 알렉산더 갤러웨이(Alexander Galloway)가 표현하듯 이제 알고리즘은 그 자체로서 블랙박스다. 이 열리지 않도록 설계된 블랙박스 안에는 계산될 수 있는 상품이 되어 버린 스펙터클과 그것들을 생산하는 ‘감춰진 생산지’인 공장 바닥이 있다.[8]

 

만물 정량 평가 : 검색 엔진과 페이지랭크 알고리즘


오늘날 플랫폼-알고리즘의 신경망에서 알고리즘은 ‘보고, 느끼고, 사고하는’ 인간 인지 신경망에 대한 침투를 더욱 가속화한다. 플랫폼-알고리즘이 자아내는 커뮤니케이션의 실행성의 네트워크를 나는 ‘인지의 로지스틱스’라고 부르고 싶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면서 플랫폼-알고리즘의 토대가 되는 원천은 검색 엔진이다. 네트에 무한하게 널려 있는 비정형 데이터를 포착하고, 그것들을 정형의 것으로 만드는 검색 엔진은 말 그대로 나침반이자 집대성된 디지털 항법 장치라 할 수 있다. 1995년에 오픈 소스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네트 공간 항법사)’가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하느냐에 따라 맞이하는 웹페이지가 달라진다. 검색 엔진은 ‘키워드 연관성’을 바탕으로 해당 키워드와 그 맥락을 같이하는 주변부 키워드들이 포함된 정보(영상, 게시글, 포스팅 등)에 가중치를 부여한 후 위계적으로 출력해 주는 장치다. 이렇게 가중치 점수를 부여받은 정보들은 이용자가 검색한 키워드에 따라 가장 관련성이 높고, 가중치가 높은 순서로 노출된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네트에 존재하는 모든 웹페이지에 수학적 가중치 점수를 매기기 위해 학술 논문 인용 시스템의 정량 평가 시스템을 이식했다. 이 시스템은 수학의 ‘마르코프 체인’ 극한 분포 개념을 도입해, 피인용 빈도가 높을수록 해당 논문이 높은 점수를 부여받도록 고안되었다. 피인용 빈도가 높은 논문은 더 중요도가 높고, 그렇지 않은 논문은 중요도가 낮게 표시된다. 다음 그림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페이지랭크에 의해 부여받은 웹페이지 가중치의 예. 출처: 위키피디아.
이 그림은 극한 분포에 기반한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이 정보의 중요도를 정량에 의해 평가하며, 질적인 영향력보다는 링크 수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B에서 C를 향하는 화살표는 B가 C를 인용했음을 표시해 주는 것이다. B는 가장 많은 웹페이지가 링크를 건 웹페이지로, 가중치가 가장 높다. C는 가장 많은 링크를 B와 링크를 서로 주고받는 것만으로 B와 거의 대등한 점수를 부여받았다. E는 많은 링크를 갖고 있지만 가중치가 낮은(아무도 링크를 걸지 않은) 페이지들과만 연결되어 있으므로 점수가 매우 낮다. 요컨대 구글이 우리에게 1페이지 가장 윗줄부터 보여 주는 웹페이지들은 가장 많이 링크가 걸려 있고 가장 많이 본 페이지들이지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구글 검색에 ‘마르크스’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자. 제일 윗줄의 웹페이지는 위키피디아다. 그 다음은 나무위키다. 그다음으로는 언론사들의 웹페이지가 나열된다(영어로 검색하면 나무위키 대신 브리태니커 백과와 엔사이클로피디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위키피디아와 나무위키는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내는 웹페이지로 가장 링크가 많이 걸리며, 하이퍼텍스트에서 항상 최상위를 차지한다. 웹에 연결된 사람들 대다수가 ‘마르크스’라고 검색하면, 무심코 읽게 되는 글은 《자본론》이 아니라 위키가 정리한 마르크스 문서인 것이다.

구글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의 강력한 정량화 아키텍처는 알고리즘 사이의 생존 경쟁에서 최후의 적자가 되었다. 야후를 비롯해 인간 수작업 기반의 트리형 아키텍처들은 점점 밀려났다. 마테오 파스퀴넬리(Matteo Pasquinelli)에 따르면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디지털 안팎의 모든 인지적 대상에 적용되어, ‘주목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측정하는 강력한 추상 장치가 되었다.[9] 알고리즘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모든 계산과 기술을 통일된 하나로 만든다. 알고리즘은 움직이는 지적 사물이며 사실상 상품 형태보다 더 효과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생산 관계를 나타냄과 동시에 그 관계를 조종한다.[10]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구글뿐 아니라 수없이 파생된 플랫폼의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 되었다. 오래전 구글에 흡수된 유튜브는 요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이 가장 급진적으로 응용되는 플랫폼이다.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할 때 이용자는 영상을 설명하는 글을 삽입할 수 있으며, 검색 알고리즘은 제목, 부제, 영상 설명, 자막, 태그 등으로부터 메타데이터를 추출해 키워드 연관성 단위로 검색 결과를 제시한다. 예컨대 ‘자동차’를 검색하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방대한 메타데이터로부터 이용자들이 검색하고 본 영상의 키워드 연관성(SUV, 세단, 벤츠, 블랙박스, 전기자동차, 테슬라, 오프로드, 승차감 등)을 찾아내고, 다시 검색 당사자가 이전에 검색 및 시청했던 기록을 기반으로 해당 키워드를 지닌 영상들을 찾아내 가중치를 매긴 다음 큰 순서대로 검색 결과를 제시한다. 최근 유튜브는 이용자로 하여금 영상 설명에 최대 15개의 해시태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유튜브 검색 알고리즘이 유튜브 안에서의 검색뿐 아니라 구글 검색,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의 검색 알고리즘과 긴밀히 연동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페이스북-메타,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검색 알고리즘도 사실상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페이스북이 관심사를 중심으로, 인스타그램이 사람을 중심으로 피드를 구성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관계와 트렌드를 팝니다 : 추천과 피드 알고리즘


추천 알고리즘은 유튜브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소셜 커머스, 배달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게 축적된 이용자들의 시청 기록과 트렌드 등 메타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에 볼 법한 영상·포스팅·상품·인물을 자동으로 추천해 피드에 올려놓거나, 유튜브의 경우 영상을 자동으로 재생하도록 만든다.

유튜브를 예로 들어 보자. ‘자동차’를 검색해 어떤 영상을 봤다면, 영상이 끝나는 시점에 연관성이 큰 다른 영상들을 제시하고 재생이 끝나면 A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본 B 영상을 추천하는 것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키워드 연관성만 분석하는 게 아니라 키워드 연관성으로 묶인 이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까지 분석한다. 예컨대 ‘자동차’ 관련 영상을 많이 시청한 사람은 ‘자동차 관리’ 영상이나 ‘모터쇼’ 영상도 덩달아 시청하게 되는데, 이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엮인 비슷한 관심사의 이용자들 사이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난 결과이다. 또한 유튜브에서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국가 전체 단위 메타데이터의 트렌드를 분석해 해당 국가에서 인기를 끄는 동영상 목록(인기 급상승·trending)을 첫 페이지에 추천해 준다. 그 외에도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좋아요 표시를 누른 영상·포스팅과 키워드 연관성이 가장 큰 영상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구독 채널에서 새 영상이 업로드되면 알림을 보내거나 자동재생 목록에 올리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경우, 이용자들의 메타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지만 피드에 추천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아카이브의 성격을 띤 유튜브와 달리, 이들 소셜 미디어는 사회 관계망을 주요한 서비스로 하기 때문에 조금 더 관계 중심적이다. 친구를 맺은 사람들, 혹은 팔로워들의 관심사를 연동시키고 비슷한 관심사를 피드에서 계속 제공해 머물도록 만드는 게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의 전략이다. 예컨대 친구 중 축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축구, 스포츠 관련 포스팅이나 광고를 우선순위로 피드에 올려놓고, 비슷한 키워드 단위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친구를 맺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고도로 자동화된 알고리즘 기반 환경에서 사회적 행위는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분석되고, 모델링되고, 예측되어 추천을 통해 특정 행위성이 유발되게끔 만든다.[11]

 

제조된 청중과 주목 : 광고와 홍보 알고리즘


셋째, 광고 알고리즘은 영상과 광고주 사이를 자동으로 매칭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부분은 매우 정교하게 자동화되어 있다. 검색 알고리즘과 피드·추천 알고리즘이 주목을 추상화하고 주목하는 행위 자체를 상품화하는 기계라면, 광고·홍보 알고리즘은 주목이라는 가치가 실현되도록 편류시키는 기계라 할 수 있다.

기존 미디어 산업과 달리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광고주와 크리에이터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연결된다. 수익을 창출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는 먼저 구글 애드센스 계정에 가입하고, 해당 영상의 광고 삽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이 되면, 자신의 영상의 카테고리에 따라 광고를 노출하고 싶은 영역을 선택하면 된다. 한편 광고주는 구글 애즈 캠페인 탭에서 자신의 광고를 송출할 수 있는데, 광고하고 싶은 타겟 지역, 언어, 카테고리, 연령대, 성별 등을 설정한 다음 세부적으로 어떤 키워드에 광고가 송출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광고 송출 기간과 해당 광고가 매칭되는 영상(혹은 웹페이지)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최저-최고 상한가 입찰을 설정한다. 이 프로세스가 마무리되면, 구글 애드워즈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키워드 연관성과 해당 영상의 가중치, 광고 입찰가를 분석해 잠재적인 영상 채널과 광고주들을 그룹으로 묶어 경매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입찰가가 높은 광고주와 중요도가 가장 큰 채널이 자동으로 매칭되어 우리가 보는 영상에 광고가 들어가게 된다. 키덜트 취미를 콘텐츠로 하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에 소형 드론이, 패션 스타일 관련 영상에 화장품과 옷이, 요리 크리에이터 영상에 주방 기기 관련 광고가 노출되는 식이다.

광고 알고리즘은 과거 회사의 경영팀과 홍보팀에서 하던 시장 조사와 이용자 만족도 조사 등의 작업을 고도로 자동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구글은 이처럼 자사 플랫폼을 투과한 광고 수익의 매칭 수수료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경우 광고 수익의 약 40퍼센트를, 그리고 광고주로부터는 해당 광고 수익의 약 28퍼센트를 수수료로 과금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사실상 동일한 광고 알고리즘을 사용하며, 다만 크리에이터의 영상에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닌 피드에 관심사와 관계 맺은 사람들(팔로워, 친구)이 공유하는 키워드 연관성을 바탕으로 광고가 삽입된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검색 알고리즘과 추천 알고리즘, 그리고 광고 알고리즘은 마치 기계의 작동기와 제어기가 유기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듯이 이용자의 활동과 데이터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또 끝없이 상품으로 가공해 유통하고 심지어 소비하도록 만든다.[12] 나의 이전 연구에 따르면, 유튜브의 총 재생 시간의 70퍼센트는 이용자가 직접 영상을 찾아 플레이한 것이 아니라 키워드 연관성에 입거한 추천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재생한 것이었다. 유튜브는 2007년 이후 그간 축적한 이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을 강화했는데 이는 이용자들의 개인적 취향을 분석해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이용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알고리즘 추천에 맞춰 바꾸기도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13] 이제 크리에이터들과 이용자들은 구글 트렌드 분석을 토대로 해서 유행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알고리즘을 타깃으로 해서 제목·설명에 키워드 및 해시태그를 의도적으로 삽입한다. 이렇게 ‘제조된’ 콘텐츠를 따라 주목이 형성되고, 이용자들이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증대됨에 따라 부도 증가하지만, 무엇보다 이용자들 자체가 ‘제조된 청중’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알고리즘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평가받는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더 큰 스노우 볼을 발생시킨다. 사람들이 영상이나 포스팅을 검색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하는 도구가 구글 검색 엔진이기도 하지만,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검색·추천 알고리즘이 키워드 단위로 가중치를 연산해 노드들을 연결하는 핵심 논리가 페이지랭크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이론가인 마테오 파스퀴넬리(Matteo Pasquinelli)에 따르면 페이지랭크는, 미디어를 뒤덮은 사회적 욕망과 지식을 축적해 상품화된 주목 경제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것은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이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범용적인 기구(apparatus)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기계인 동시에 컴퓨터화된 이데올로기 그 자체다. 페이지랭크는 키워드 검색 결과를 연산된 밸류값에 따라 높은 점수의 웹페이지를 순서대로 나열하는데, 웹페이지에 연결된 노드 중 하이퍼링크를 가장 많이 연결한 노드에 가중치 점수를 부과한다. 구글의 검색 결과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순서대로’ 나열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링크가 가장 많은 ‘가장 정량적이고 세속적인’ 노드의 게시물부터 보여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웹페이지를 가장 많이 보고, 신뢰하고 또 퍼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확증 편향과 필터 버블도 덩달아 발생한다.
이처럼 페이지랭크는 이용자들이 생성한 검색 결과와 링크 연결을 바탕으로 ‘주목’에 도구적 합리성에 따른 가치를 부여한다. 질보다는 양이, 사유보다는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페이지랭크는 정보와 데이터를 고유의 정성적 가치뿐 아니라 중요도나 인기도에 대한 특정 정의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세상에 위계질서를 창조하는 도구이자 그 자체로서 체계가 된다.[14]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지식을 생성하는 이전 단계인 정보, 정보 이전 단계인 데이터들 사이의 접속 과정을 자동으로 동기화할 뿐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대량으로 생산한다.

키워드를 검색하면 유튜브 영상이 가장 먼저 표시되고, 사람들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구독, 좋아요를 누르거나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다시 이 키워드 연관성을 바탕으로 이 영상을 볼 법한 사람들에게 피드의 최우선 순위로 영상 링크를 올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또 좋아요를 누르거나 리트윗, 해시태그 공유를 한다. 여기에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연동되어, 영상 시청 시간과 광고 시청 시간은 스노우 볼 효과로 비약적인 증대를 이룬다. 그러니까,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은 이제 단순한 신호나 표지판이 아니라 ‘추상화된 주목 가치’의 척도이면서 블랙박스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광고 시청 시간·키워드 연관성· 해시태그·광고 매칭 등의 다른 기술 요소들에 조응하는 ‘사회적 필요 시청 시간’이자 주목의 잉여가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핀이 비판하듯이, 페이지랭크는 사람들의 주목을 이용하는 경제에서 필수 통화인 아이디어의 순환을 위한 기본 색인을 구축하고, 애드센스라는 시장 입찰 시스템을 이용해 검색 결과에 기반을 둔 광고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전에 없던 규모의 주목을 현금화하는 데 성공했다.[15]

 

광고, 구독료, 후원을 통한 주목의 가치 실현


주목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려면, 주목의 형태로 응축된 잉여가치소가 실현되어야만 한다. 플랫폼-알고리즘을 통해 걸러진 주목은 지대의 형태로 가치를 실현한다. 이 지대는 크게 세 가지 형식, ①광고(수익 배당금, 매칭 수수료, PPL), ②구독료, ③후원금으로 이뤄져 있다.

①광고 수익은 플랫폼-알고리즘을 운용하는 자본과 그 안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터 모두가 가장 의존하는 부문이다. 어떤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할 때, 광고를 삽입할 수 있는 옵션을 설정할 수 있다. 이 설정에 따라 광고 매칭 알고리즘인 구글 애드센스에 의해 광고주와 자동으로 연결된다. 애드센스는 동영상 재생 기반을 기준으로 시청 시간을 계산해 예상 수익을 알려 주고, 더 많은 광고를 더 긴 시간 동안 재생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광고는 광고주가 크리에이터가 직접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 애즈에 가입한 광고주와 키워드 연관성으로 자동 매칭되어, 입찰도 자동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수익을 구글과 스트리머가 45:55로 배분한다. 즉 구글은 유튜브에서 광고 자동 매칭 알고리즘에 홍보 알고리즘, 추천 알고리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 피드 알고리즘을 연결해 주목에서 지대로의 가치 실현 순환을 만든다. 유튜브의 알고리즘들은 키워드 연관성과 해시태그,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동영상을 재생(즉 광고를 시청시키도록)해, 주목을 가치로 전환한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피드 알고리즘과 광고 알고리즘은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페이지랭크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주목의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한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페이스북에서도 보고, 인스타그램에서도 본다. 이 영상들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와 해시태그에 따라 비슷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재생하고, 무수한 광고들의 개입 속에서 주목은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구글은 이렇게 발생한 광고 수익의 45퍼센트를 떼어 가지만, 이용자와 그 어떤 노동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다. 말하고, 읽고, 쓰고, 좋아하는 활동으로부터 비정형 데이터들이 만들어지고, 빅테크는 그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해 메타데이터를 만들며, 그로부터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알고리즘은 다시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를 개량한다. 이 사이의 가치 생성과 실현의 노드들을 연결하는 것은 광고다. 유튜브의 첫 페이지, 페이스북의 첫 피드에서 우리가 읽고 분석하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고, 그 사이사이에는 광고가 있다.

②구독료 수익은 채널 차원의 유료 구독료와 플랫폼 전체 차원의 유료 구독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채널 차원의 유료 구독료를 운영하는 대표적 사례는 트위치TV라는 방송 크리에이터 전문 플랫폼이다. 트위치의 시청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채널을 유료로 구독할 수 있으며, 지불 비용(4.99달러/9.99달러/24.99달러)에 따라 티어1/티어2/티어3 등급으로 나뉜다. 구독료 수익은 크리에이터와 트위치가 50:50 비율로 나눠 가지는데, 스트리머의 50 부분에서 다시 세금과 결제 수수료를 뺀 금액이 실제로 입금된다. 원천징수 소득세 10퍼센트, 결제 방식에 따라 결제 대행업체가 책정한 각 결제 수수료, 마지막으로 조세 협약을 맺지 않은 국가일 경우 30퍼센트의 추가 수수료가 더해진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조세 협약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 시민임을 인증하면 이 30퍼센트는 면제된다. 트위치TV는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를 철수했다.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는 예는 아프리카TV에서 볼 수 있다. 아프리카TV의 채널 구독료는 3300원이다. 트위치TV나 아프리카TV나 좋아하는 채널을 유료 구독하면 다양한 전용 혜택(구독자 전용 채팅, 광고 스킵, 구독자 뱃지, 구독자 전용 이모티콘)을 활용해 크리에이터와 더 긴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플랫폼 전체 차원의 구독료로 수익을 배분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은 당연히 유튜브이다. 유튜브에서 이용자들은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채널을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대신 유튜브는 모든 광고 시청을 면제해 주는 프리미엄 구독료 시스템(2024년 한국 기준 월 1만 5900원, IOS 1만 9500원)을 운영한다. 구글은 영상을 업로드하는 자의 채널 구독자 수, 영상의 광고 시청 시간, 총 영상 시청 시간, 시청 시작 지점과 종료 지점, 조회 수 등을 계산한 다음 프리미엄 구독자의 수와 광고 수익 지분(수수료 45퍼센트)를 반영한 다음 크리에이터에게 배당 형식으로 수익을 분배한다. 내가 영상을 올렸을 때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구글은 우리에게 ‘예상 수익’을 알려 주지만, 알고리즘이 어떤 식으로 주목을 ‘예상 수익’으로 배분해 주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무도 모른다.

③후원금은 모든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운영하는 수수료 창구로, 크리에이터들에게는 가장 직관적이고 비중이 큰 수익이다. 후원금은 영상 콘텐츠도 제작과 더불어 생방송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해당하는 방식이다. 유튜브의 경우 슈퍼챗이라는 후원 시스템을 통해 방송 중인 크리에이터에게 실시간으로 기부할 수 있으며, 유튜브 측에서 부가 가치세를 부담하는 동시에 수수료로 30~37퍼센트를 수취해 간다. 트위치에서는 자체 운용하는 트위치 비트를 먼저 구매한 후 비트를 소모하여 크리에이터에게 후원할 수 있는데, 크리에이터에게서 수수료를 수취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로부터 부가 가치세를 포함한 수수료를 수취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시청자가 트위치에서 크리에이터에게 1달러를 후원하고자 한다면 100비트가 필요한데, 100비트를 구입하려면 기본 수수료와 부가세를 포함해 54퍼센트가 추가된 금액인 1.54달러를 트위치 측에 지불해야 한다. 비트를 많이 구입할수록 수수료 비율은 낮아져서, 최대 구매 가능 금액인 2만 5000비트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42퍼센트의 수수료를 더한 338.8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즉 트위치 비트는 후원자로 하여금 후원액의 42~54퍼센트를 추가 지불하도록 한다. 여기에 트위치와 유튜브 모두 환전 수수료(달러-원화, 위안화-엔화 등)를 후원자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원화의 경우 자동으로 미국 달러로 해외 결제되기 때문이다. 유튜브 슈퍼챗과 트위치 비트 모두 후원 금액이 많을수록 후원자가 방송 화면에 띄울 수 있는 메시지의 길이와 후원 표시가 화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다.

트위치(트위치 비트)와 유튜브(슈퍼챗) 모두 자체적인 후원 시스템을 운용하면서 별도로 외부 결제 대행사의 후원 시스템인 ‘트윕’과 ‘투네이션’ 두 가지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즉 트위치와 유튜브 이용자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스트리머에게 후원할 수 있다. 트윕과 투네이션 둘 다 결제 시 후원자로부터 부가세 10퍼센트를 추가 지불받기 때문에, 1달러를 후원하기 위해서는 1.1달러를 각 업체에 결제해야 한다. 크리에이터가 1달러를 후원받으면, 결제 방법에 따라 책정된 각 수수료를 뺀 나머지 금액을 트윕과 투네이션 측으로부터 정산받는다.

하나의 예를 만들어 보자. 시청자 A가 트위치TV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에게 미션에 성공하면 100달러를 후원하는 ‘내기 미션’을 제안한다. 크리에이터가 미션에 성공하면 A는 트윕을 통해 신용 카드로 부가 가치세 10달러와 환전 수수료 1달러 포함 111달러를 결제한다. 100달러에서 신용 카드 수수료 3.3퍼센트, 원천 징수 소득세 3.3퍼센트, 트윕 서비스 수수료 1퍼센트를 제외한 76달러가 정산일에 크리에이터의 계좌로 들어온다. 이 스트리머는 다음날 유튜브에서도 같은 콘텐츠로 생방송을 하는데, 이번에는 B가 슈퍼챗을 통해 100달러를 결제한다. 유튜브는 따로 부가 가치세 없이 순수하게 100달러만 결제하도록 하지만, 대신 후원금의 37퍼센트를 제외한 63달러를 B에게 정산해 준다. 우버와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이 평균 20~25퍼센트 사이의 수수료를 수취하는 것을 생각하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서 주목이 지대로 실현되는 과정에서는 실로 엄청난 부불 노동(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노동) 부문이 도사리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플랫폼만 놓고 보자면, 가치의 생성에서 교환,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전 프로세스는 이미 알고리즘에 의해 고도로 자동화된 상태다. 플랫폼-알고리즘에 수없이 교차되는 이용자, 광고주, 크리에이터의 활동은 하나의 신경망처럼 서로에게 상보적이고 또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리즘이라는 아키텍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포착하고 가치화하며 실현하는 주목의 자본주의적 동역학, 플랫폼-알고리즘의 신경망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적인데, 하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이윤 추구 활동들을 네트워크 효과 속에서 플랫폼의 독점적 부로 집적시키는 ‘자율화(autonomation)’를 추동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를 생성하고 실현하는 개별 활동들을 통제하는 알고리즘에 이용자들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알고리즘은 그 자체로서 이미 결정화된 권력 관계다. 정보사회학자 백욱인이 지적하듯이, 플랫폼은 감시자가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피감시자를 보는 광학기계인 파놉티콘과 같다. 이용자들은 인터페이스와 재현에 몰입한 채 플랫폼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없으며, 파놉티콘은 플랫폼 아키텍처 내부(즉 알고리즘에)에 있다.[16]

노동과정론의 창시자인 해리 브레이버만(Harry Braverman)은 기계를 통해 노동과정을 지배하는 인간의 능력은 직접적인 생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소유자나 대리인에 의해서 생산을 통제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기계는 생산자나 연합의 소유물이 아닌 어떤 외적인 힘(잉여가치 축적)의 소유물로 남게 된다고 설명한다.[17]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물리적 힘만의 자동화를 넘어서 인간 행위자의 관심의 항상적 분산, 반응의 즉각성을 기술적으로 편재화하는 것이 핵심이다.[18] 요컨대 긴밀하게 구조화된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은 생산관계를 만들고, 또 재생산을 순환시키는데, 그 대미를 빅테크-이용자 간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알고리즘 통치성(algorithmic governmentality)’이 두뇌를 뒤덮고, 정치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동시에 인간의 인지·창조적 능력을 확장하거나, 네트워크에 접속한 노드들 사이에 라포를 형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잉여를 추출하는 인지 기계 — 즉 노동가치론에서 기계와 생산 수단에 해당하는 불변 자본의 핵심적인 요소로 포착된다. 이제 브레이버만의 노동과정론을 플랫폼 — 알고리즘 신경망이라는 개념 속에서 재구성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안에서 어떤 노동과정들이 동반되는지 주로 크리에이터들과 영상 편집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Sut Jhally and Bill Livant, 〈Watching as Working: The Valorization of Audience Consciousness〉, 《Journal of Communication》, 36(3), pp. 124-143.
[2]
카를 마르크스(강신준譯), 《자본 1-1》, 길, 2008, 92-93쪽.
[3]
Jonathan Beller, 《The Cinematic Mode of Production: Attention Economy and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4]
Jonathan Beller, 《The Cinematic Mode of Production: Attention Economy and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p. 11.
[5]
Claudio C. Bueno, 《The Attention Economy: Labour, Time and Power in Cognitive Capitalism》, Rowman&Littlefield International Ltd, 2017, p. 22.
[6]
에드 핀(이로운譯), 《알고리즘이 욕망하는 것들》, 한빛미디어, 2019, 77쪽.
[7]
에드 핀(이로운譯), 《알고리즘이 욕망하는 것들》, 한빛미디어, 2019, 81쪽.
[8]
알렉산더 갤러웨이(이나원譯), 《계산할 수 없는》, 장미와 동백, 2023, 263쪽.
[9]
Matteo Pasquinelli, 〈Google’s PageRank Algorithm: A Diagram of the Cognitive Capitalism and the Rentier of the Common Intellect〉, in Konrad Becker and Felix Stalder (eds), 《Deep Search: The Politics of Search Beyond Google》, Transaction Publishers, 2009.
[10]
맛떼오 파스퀴넬리(서창현譯), 《동물혼》, 갈무리, 2013, 137쪽.
[11]
박대민, 〈인공지능과 정보통치성: 인공지능과 자동화 사회에 대한 알고리듬 통치성의 비판적 확장으로서 정보통치성〉, 《언론정보연구》, 57(4), 2020, 55-94쪽, 66쪽.
[12]
신현우, 〈유튜브 제국의 네트워크 경제: 디지털 공유지의 인클로저와 이용자 활동의 기계적 전유〉, 《문화/과학》, 98, 2019, 179-195쪽.
[13]
이희은, 〈유튜브의 기술문화적 의미에 대한 탐색: ‘흐름’과 알고리즘 개념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언론과 사회》, 27(2), 2019, 5-46쪽.
[14]
에드 핀(이로운譯), 《알고리즘이 욕망하는 것들》, 한빛미디어, 2019, 249쪽.
[15]
에드 핀(이로운譯), 《알고리즘이 욕망하는 것들》, 한빛미디어, 2019, 251쪽.
[16]
백욱인,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조건》, 휴머니스트, 2023, 204쪽.
[17]
Harry Braverman, 《Labor and Monopoly Capital: The Degradation of Work in the Twentieth Century》, Monthly Review Press, 1974.
[18]
김홍중, 〈플랫폼의 사회이론: 플랫폼 자본주의와 알고리즘 통치성을 중심으로〉, 《사회와 이론》, 1, 7-48쪽,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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