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들이 소통을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존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고립되고 불안정한 작업 조건으로 인해 또래 집단의 정체성 형성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다른 일자리에 비해 평판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는 평판이 하나의 자산이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큰 노력을 들여야 하며, 편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크리에이터의 경우도 비정규직 또는 외주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자칫 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외로이 떨어진 채, 알고리즘에 연결되어 ‘언제나 작동 중’[1]인 작업자들이다.
연구자와의 면접은 그들이 좀처럼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소속감, 작업의 실체에 대해서 스스로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구자와 깊은 라포를 형성한 크리에이터B의 경우, 다년간 자신이 외주한 작업의 계약서들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며 부조리한 알고리즘 노동 환경의 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 나는 철저한 신상 정보 은닉을 약속한 뒤 심층 면접을 진행해 녹취록으로부터 날데이터를 수집하였다. 인터넷 에스노그라피와 심층 면접을 진행하면서, 나는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실질적인 부의 창출에 기여하는 노동과정이 무엇인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메타데이터의 인클로저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양의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정리되지 않은, 무질서하고 방대한 데이터 덩어리를 비정형 데이터라 부른다. 이는 소설가 보르헤스가 묘사한 ‘바벨의 도서관’에 비할 수 있다. 바벨의 도서관에는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기호가 무작위로 조합된 책들, 다시 말해 아무런 의미도 구조도 없는 책들이 무한대로 생성된다. 진리를 갈구하며 도서관에 찾아온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 결국 미쳐 버린다. 이 책들을 하나씩 읽어 나가며 그중 말이 되는 책들을 서지 목록으로 작성하는 서기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서지 정보가 메타데이터이다. 서기가 의미 있는 것으로 판단한 책에 담긴 정보가 정형 데이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터넷에 접속한 채, 무한한 기호들의 조합으로 무작위 책을 만들어 내는 비정형 데이터의 생산자들이다. 알고리즘은 정확히 서기의 역할을 담당한다.
메타데이터는 지구 인터넷의 수많은 이용자 활동으로 만들어진 비정형 데이터로부터 쓸모 있는 것들을 추출하기 위한,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이다. 이 잠재적 사용 가치의 덩어리는 반드시 정제되어야(정형 데이터가 되어야) 유용한 것으로 변환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정형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 메타데이터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서지 정보 목록이 없다면 우리는 보르헤스가 묘사한 순례자들처럼 바벨의 도서관 속에서 길을 잃고 미쳐 버릴 것이다. 메타데이터는 비트로 된 원료이자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메타데이터가 자연의 석유나 석탄과 다른 점은 비정형 데이터를 생성하는 다중의 집합적 이용자 활동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 에너지이고 인간 원료다. 석유와 석탄은 지구 46억 년의 지층과 유기체 활동이 축적되면서 생성되지만, 비정형 데이터는 네트워크에 접속된 인간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인터넷에 접속하고, 검색하고, 소비하고, 공유하고, 사진을 올리거나 좋아요 표시를 하는 등 삶의 발자국을 데이터로 남기는 삶 활동 자체가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가치의 원천이 된다. 이것이 알고리즘 노동과정의 첫 번째 단계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인간이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 소재와 대립, 유용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신체적 힘을 가해 자연을 변화시킨다고 적고 있다.[2] 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nature)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nature)도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를 매개하는 신진대사의 과정이다.[3] 우리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은 인간의 합목적적 데이터 활동이 만들어 낸 제2의 자연이며, 인간은 비정형 데이터를 삶에 유용한 형태로 변환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감각·정동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차츰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이 된 네트워크와 대립하는데, 자유로웠던 사이버 스페이스 네트워크의 활동은 곧 메타데이터의 지도화를 거치며 교환 가능한 것을 만들어 내는 노동으로 전화한다.
비물질노동 이론가인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erardi)가 지적하듯이, 노동의 디지털적 변형 과정에서 네트워크 내부로 노동을 포획하는 게 핵심이다.[4]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노동과 대립하는 자연 소재가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면서 네트워크 자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네트워크는 컴퓨터로 구성된 전자적 세계를 통해 소통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성적 노동자 공동체들을 전유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5] 지구와 자연은 신이 창조했을지 모르나, 메타데이터와 네트워크는 인간 활동이 창조해 낸 것이다.
메타데이터를 독점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빅테크 자본의 힘,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촘촘한 망은 검색하고,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는 모든 활동으로부터 사용 가치 이상의 것들을 추출하기 시작한다. 3장에서 살펴봤듯이 알고리즘은 우리가 검색한 키워드에, 페이지에, 그리고 시청한 영상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거기에 광고를 끼워 넣는다. 플랫폼은 알고리즘이 매개한 획일적인 경로들을 따라온 사람들이 만나고 교환하는 장이다. 이제 네트워크 안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은 없다. 메타데이터는 구조화되었고, 경로 의존성을 띠게 되었으며(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처럼), 우리는 그 구조를 축약한 알고리즘의 축적법 위에서만 움직인다. 이 축적법은 교환과 잉여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비정형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무수한 삶 활동은 결국 잉여가치소로서, 노동과정의 맹아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토대가 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네트워크 전체를 비선형적 인간 노동력의 덩어리라고 파악해야만 한다.
비물질노동 이론가들은 디지털과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뤄지는 노동에 관해 많은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알고리즘과 지능 기계들의 역량은 비물질노동 이론이 들여다본 웹 1.0 시대를 많은 부분에서 추월했다. 비물질노동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물질 소재로 된 기계와 달리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 등은 인간 노동을 ‘추상화’하는 기능까지는 없다고 보는 데에 있다. 추상화한다는 것은, 기계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일정하게 작동하면서 인간 작업의 질적인 측면을 양적으로 계량해 구체적인 노동력을 임금으로 도출하는 힘(다시 말해 노동력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는 자본의 힘)을 뜻한다. 자본주의 동학의 필수 성분인 잉여가치는 이렇듯 추상화를 거쳐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으로부터 차츰 형태를 갖춘다. 찰리 채플린의 작품 〈모던타임즈〉는 물질 소재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력의 추상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영화다. 비물질노동 이론가들은 모던타임즈 기계가 아이디어, 인지, 감정, 정동 같은 정신적 활동이 시간당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지는 계산해 주지는 못한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티지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가 정의한 자유 노동(freelabour) 개념이다. 테라노바는 디지털 경제에서 비물질노동의 생산 능력은 읽기·쓰기·관리하는 능력과 메일링 리스트·웹사이트·통계 차트에 참여하는 행위들을 망라하며, 자본은 이러한 자유 노동의 프로세스를 통제하며 가치를 축적한다고 주장했다.[6] 자유 노동에서 자유란 중의적 의미를 띤다. 하나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이 이들의 노동을 공짜로 전용해 자유롭게 수익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자유이다. 자유 노동은 인터넷에 의한 지속적이고 갱신 가능한 노동 가치의 추출이 가능한 집합적 노동으로, 금전적으로 보상받지 않으며 소통의 기쁨, 선물적 교환의 향유 속에서 기꺼이 행해진다.[7] 비물질적이고 정동적인 노동과정에 의존하는 자유 노동은 그 결과물이 상품이 아니라 생산 과정 그 자체가 된다.[8]
비물질노동 이론의 선구자인 네그리와 하트, 라자라토 등도 정보와 컴퓨터의 네트워크에서 행해지는 비물질적 노동의 ‘정동적’ 측면을 강조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등의 영상, 콘텐츠, 글, 이미지 등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비물질적 가치들은 “편안한 느낌, 행복, 만족, 흥분, 열정, 심지어 결속감이나 귀속감도 포함하는” 정동적 노동의 생산물이라고 간주한다.[9]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 출간 이후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와 달리 비물질노동의 가치가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으로 추상화되기 어려우며, 가치 크기가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편리하게 전유된다고 주장했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런 이유 때문에 노동가치론 자체가 전면 재고돼야 한다고까지 역설했다. 오늘날처럼 생산의 장소가 모든 네트워크와 노드에 심어지는 사회적 공장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사이,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구별은 죽었으며 노동이 가치의 기초라면 가치는 똑같이 노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0]
그러나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잉여가치소인 메타데이터가 인간의 삶 활동(즉 네트워크의 집합적 노동)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추상화의 잠재태가 거기에 내재돼 있음을 뜻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논의는 이후에 많은 비판을 받았듯 노동과 노동력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브레이버만이 설명하듯이, 노동력의 본질은 정신적인 것이거나 육체적인 것 등이 아니라 ‘노동력이 매매될 수 있는가’이다.[11] 그것이 비물질적이건 정동적인 것이건 아무 상관이 없다. ‘상품처럼 거래될 수 있고 양도할 수 있다면’ 형식이 물질이건 비물질이건 잉여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비물질노동 또는 자유 노동이라는 관념적인 정의만으로 빅테크의 막대한 부를 설명하기란 역부족이다. 이 장에서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알고리즘 노동과정을 살펴보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알고리즘은 물질뿐 아니라 비물질적이고 정동적인 영역까지 미세하게 추상화한다. 인간의 구체적 노동을 추상화한다는 것은, 시간당 상품을 만들어 내는 노동력의 크기를 측정하고 그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음을 뜻한다. 개별의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상이한 노동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이것을 노동 일반으로 추상화해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이라는 척도로 가격을 매긺으로서 구체적인 노동은 추상적인 노동이 된다. 즉 추상화는 인간 노동력 자체가 가격표가 붙은 상품이 돼가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이 역할을 기계류가 수행했다. 노동력의 가치가 계량화되면, 그다음엔 만들어진 상품에 실제로 들어간 노동력보다 더 적은 가치로 임금을 책정해 지불하는 과정이 남았다. 잉여가치는 이 과정, 노동자에게 실제 상품을 만드는 데 투입된 노동력의 가치보다 덜 지불하면서 만들어진다. 잉여가치는 즉 지불되지 않는 잉여 부분, 잉여노동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의 매매는 ‘계약된 노동량’이 아니라 ‘계약된 시간 동안의 노동력’을 척도로 이뤄진다.[12] 요컨대 알고리즘은 동영상·소통·리액션·표현 등으로 이뤄진 문화적 재현의 정동적 요소들을 구독·좋아요·해시태그·조회 수·페이지랭크 가중치 등으로 계량화해, 잉여가치로 바꿀 준거들을 마련한다. 이제 인간의 정동적 측면들은 잉여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체계적인 잉여노동태가 되어 간다.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물질/비물질, 육체/정신, 물리/정동 노동의 차원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게다가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육체노동자도 고도로 정동을 소모한다. 비물질노동 개념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인 조지 카펜치스(George Caffentzis)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어떤 규칙-지배적인 활동이 계산 가능하다면 상품을 생산하는 모든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노동(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기계화될 수 있다.”[13] 카펜치스는 이 기계가 곧 튜링 기계이며, 튜링 테스트와 중국어 방 실험에서 보듯 인간의 지적이고 정신적 활동도 당연히 기계화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기계란 그것이 물리적 형태건 알고리즘처럼 논리적 형태를 띠건 ‘에너지의 발생 장치’가 아니라 ‘투입된 힘들이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변형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14] 그리고 그 힘은 오로지 인간 노동으로부터 나온다. 기계는 스스로 힘이나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계는 스스로 잉여가치를 만들지도 못한다. 알고리즘이라는 기계 또한 마찬가지다. 플랫폼-알고리즘이 빅테크에 집적하고 있는 거대한 부는 결국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는 부불 노동, 즉 지불되지 않지만 우리가 전혀 보지 못하는 대량의 잉여노동이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곧 이 잉여노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에 지층처럼 축적되고 있는 비정형 데이터(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이용자 활동)와 메타데이터 추출은 무엇으로 봐야 할까? 앞서 논증했듯 자유 노동이나 비물질노동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여기에 대한 더 좋은 대답은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해 인터넷 전체가 다중이 집합적으로 쌓아 올린 커먼즈(commons)이고, 국가나 자본에 속하지 않는 공통재로 보는 접근이다.[15] 커먼즈는 재산권(property)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배타적 소유권이 아닌 공동 관리와 공유, 탈중앙화와 집합 행위를 통해 쌓아 올려지는 네트워크의 부를 구조화하는 시스템이다.[16] 도서관과 서지 정보를 생각하면 쉽다. 도서관은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부터 미국 독립 이후 프랭클린과 메디슨이 설립한 공공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모든 책을 열람할 수 있는 커먼즈이다. 책으로 출간된 모든 지식과 정보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통의 자원인 것이다. 갓 독립한 미국 정부는 도서관의 이런 커먼즈적 성격을 처음 기본 권리로서 헌법에 명시했다. 미국 헌법은 메디슨의 1865년 선언, “정보를 공공의 것으로 여기지 않거나 그것을 소득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는 비극의 전조이며 (…) 민중은 반드시 공통의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를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 미국 곳곳에 공공 도서관을 설립하는 개혁을 추진했고, 오늘날 도서관은 가장 기초적인 정보 커먼즈이다.[17] 어떤 책을 읽을지, 원하는 정보를 어느 책에서 찾을지 서지 정보(메타데이터)에 접근하는 것도 제한이 없어야 한다. 그것들은 모두의 지식과 정보로 이뤄진 커먼즈이기 때문이다.
빅테크는 공공 도서관의 서고 곳곳에 가판대를 설치해 놓고 서지 정보를 돈 받고 파는, “커먼즈의 기생체”[18]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정형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다중의 삶 활동은 상품(정형 데이터)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의식적 활동 그 자체의 집합적 구성물로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자원이다.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가 비판하듯이, 빅테크와 자본은 이 네트워크로 이뤄진 공통 영역, 커먼즈 자체를 사적인 분야로 인클로저(enclosure)한다.[19] 과거의 자본가들은 몰락한 귀족의 영지와 비어있는 공유지에 토지 문서를 들고 들어와 울타리를 치고 사적 소유를 명시했지만, 오늘날의 자본가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은 이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의 커먼즈에 침범해 플랫폼의 형태로 사적 소유를 추구한다. 이 디지털 커먼즈를 만든 다중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활동을 노동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그들이 만든 결과물들이 상품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초창기 유튜브가 아무나, 돈벌이와 상관없이 영상을 올리던 공간임을 기억하자. 그러나 오늘날의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은 후원금, 광고 수익으로 표현된 노동의 자장으로 삶 활동을 포섭한다. 데 안젤리스De Angelis의 비판처럼, 다중이 집합적으로 쌓아 올린 지식과 정보의 커먼즈를 사적으로 점유하고, 이를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며,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의 창출 과정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클로저인 것이다.[20]
그런데 역사적으로 인클로저는 항상 강탈(dispossession)의 형태를 띠어 왔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토지 커먼즈에 대한 대대적인 인클로저가, 실제 커먼즈의 경작자들이었던 사람들(소작농)에게 한 푼의 보상도 없이 말 그대로 강탈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이른바 토지의 청소(Clearing of Estates)는 커먼즈로부터 사람들을 쓸어내는 것, 즉 강제로 빼앗고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었다.[21] 《자본론》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최초의 자본주의적 축적인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은 노동력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착취(exploitation)가 아니라, 커먼즈의 강탈로부터 시작된 역사다. 기계류의 도입과 체계화, 분업, 노동력의 상품화와 노동과정의 관리는 그다음에 온다. 우리는 이 인클로저가 오늘날에는 플랫폼-알고리즘의 형태로 진화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자본은 비정형 데이터의 생산자들인 지구의 다중들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했는가? 아니다. 생성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데 들어간 데이터에 저작권료를 지불했는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서비스와 재화를 사람들이 무료로 사용하게 개방했는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빅테크가 지식·정보 커먼즈에 대한 대대적인 인클로저를 행하고 있음에도, 빼앗긴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식·정보 커먼즈가 풍요재의 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에 따르면 이러한 커먼즈는 자연 자원과 달리 한정재가 아니기 때문에 배타적 이용의 대상이 아니며 파괴되거나 고갈될 수도 없다.[22] 토지 커먼즈가 강탈당하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만, 비정형 데이터가 사유화된다고 해서 당장 삶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은 조금씩, 문화적 생산과 결부된 우리의 삶을 잠식해 들어온다. 커먼즈의 인클로저 과정에서 추출된 메타데이터, 메타데이터로 만들어진 사유지의 울타리인 플랫폼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이제 플랫폼의 소유자들이 요구하는 세금을 내기 위해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플랫폼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생산한 공유 자산이자 성과(빅데이터, 네트워크 외부 효과)를 기업이 초과 이익으로 전환하고, 차액지대 형식으로 재전유하게 되는 것이다.[23]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메타데이터 속에서 시초축적을 가동한 자본이 과연 광고 수수료, 후원 수수료, 매칭 수수료, 외주 수수료 등 지대 형식으로만 잉여를 축적하는가이다.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 안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외주, 하도급, 프리랜스 방식으로 일한다. 그 형식이 임금이 되었건 지대가 되었건 간에 불안정하게, 자유롭게, 더 오랫동안 불안정하게 일하게 만들고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잉여’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나의 설명은, 자본이 플랫폼-알고리즘이 시초축적으로부터 지대를 추구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잉여노동분을 스스로 착취하게 만드는 방식을 투 트랙으로 가동해 부를 착복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비정형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다중들의 활동은 플랫폼의 인클로저와 강탈을 통해 포섭되고, 알고리즘은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삶 활동을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의 기준으로 척도화한다(구독, 좋아요, 시청 시간, 매칭). 이제 마르크스가 ‘가치 실현을 위한 필사적인 도약’이라고 말한 단계에 다다르는데, 이는 플랫폼-알고리즘에 예속된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동을 ‘잉여노동’으로 만드는 자기 착취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알고리즘은 작업자로부터 잉여노동을 추출한다
유튜브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서 교환되는 것은 영상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다. 이는 직접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매개로 교환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상품 경제와 다른 측면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런 이미지·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정동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이 요구된다. 취미 삼아 유튜브·소셜 미디어 등에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사람들과 달리, 크리에이터들은 수익 추구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알고리즘은 이 욕망을 미끼로 콘텐츠 경쟁을 부추기고, 그들의 생산물을 계량화한다. 구독자 수, 조회 수, 광고 시청 시간, 좋아요 수, 총 영상 시청 시간 등의 요소들은 크리에이터들의 정동적이고 창의적인 작업 결과물을 ‘노동 결과물’로 추상화하기 위한 프로세스다. 전통적인 문화 산업 포맷은 주로 외주를 통해 전통적인 착취와 유연화의 문법을 따라간다. 반면 알고리즘은 이전까지 추상화된 적이 없던 부불 노동(열정, 감정, 창의력, 센스 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환산해 광고 수익으로 결부시킨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블랙박스화돼 있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식으로 광고 수익을 내는지 이용자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당사자들은 자신의 노동과정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가치를 생성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데에 있다.
플랫폼 자본은 이 비대칭성을 활용해 개별의 노동과정을 파편화하고, 노동하는 당사자들이 실제 만들어 낸 가치보다 더 값싸게 일하도록 만든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 잉여가치는 잉여노동으로 계산된 상품을 팔아서 만들어졌으나, 알고리즘 자본주의에서는 개별 작업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잉여화한다. 자기 착취란 곧 자신의 창조적인 작업을 스스로 잉여노동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것은 열정 페이나 비물질노동 혹은 자유 노동이 아니라 잉여(수수료 형태로 값이 매겨진)를 만들어 내는, 인수분해된 산 노동이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작업을 또 다른 개인에게 외주하거나, 스스로 더 값싸게 일하도록 채찍질한다. 알고리즘은 잉여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감독관이나 규율 없이도 더 강도가 높은 알고리즘의 포승줄에 스스로를 포박하도록 만든다.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가 설명하듯 알고리즘에 의해서 확산된 자동화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사회적 명분을 제공하면서 구조 뒤편에서는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맞춰 자신의 행위성과 사고를 스스로 주조하게끔 만드는 통치성, ‘알고리즘 통치성’을 생산한다.[24]
알고리즘은 이전에 없었던 인간 정신과 인지에 대한 추상화, 그리고 인지 자동화의 기능을 탑재하게 됐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 제조업 공장에서 기계류가 하던 역할은 플랫폼-알고리즘 환경에서 재구성된다. 더 많은 가중치를 획득하고, 더 많이 노출되어 광고 수익을 벌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이 정한 추상화 척도로부터 높은 주목 점수를 받아야 한다. 주목을 더 많이 획득할수록, 자신이 업로드한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수익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크리에이터들은 알고리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기능과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크리에이터들은 이를 “알고리즘으로부터 간택받는다”라고 표현한다. 크리에이터들의 커뮤니티에서 실시간 베스트 게시물로 올라오는 상당수의 글이 알고리즘으로부터 어떻게 간택받는지에 대한 팁이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간택’은 과정은 어려워도 방법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자신이 사회에서 가지는 영향력인 사회적 자본이 토대이고 주기적으로 포스팅을 업로드하면서 친구를 많이 만들고 좋아요를 최대한 많이 받아내면 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피드 알고리즘은 비교적 정직한 편이다. 그런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훨씬 복잡하다. 알고리즘이 측정하는 몇몇 기축 요소들이 있는데, 그 중 ‘키워드 연관성’이 대표적이다.
키워드 연관성이 더 클수록 노출 빈도는 커진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키워드로 콘텐츠를 구성할지 시작 단계에서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제목, 자막, 영상 설명, 섬네일이 어떤 키워드를 포함할 것인지 먼저 설정해야 하고 콘텐츠도 알고리즘에 맞춤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유튜브는 광고 재생 시간 총량, 영상의 시청 시작 지점과 종료 지점 및 그 구간의 재생 시간 등이 알고리즘에 의해 측정되고 구독자 수에 따른 프리미엄 구독료의 배당분과 함께 수익이 분배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채널 구독자가 지속적으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올리는지 빈도를 측정해 이를 기대 수익 값의 변수로 집어넣는다. 크리에이터들이 가장 고심하고, 어려워하며, 실제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알고리즘에 간택받기 위해 ‘부수 작업’을 해야 한다. 알고리즘 인지 자동화는 문화의 생산과 유통에 들어가는 시간을 엄청나게 절감했지만, 동시에 늘어난 부수 작업을 통해 부불 노동 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저는 큰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 제작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입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요. 알고리즘에 신경을 엄청 써야 합니다. 저는 2~3명의 영상 제작자와 함께 일을 하는데, 서로 알고리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해야 조회 수가 올라가는지, 언제 올려야 사람들이 많이 보는지, 어떤 내용으로 구성해야 사람들이 영상을 안 끊고 끝까지 보는지, 이런 것들요. 알고리즘이 이걸 다 관찰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알고리즘에 관해서는 노하우가 쌓이지도 않고, 또 계속 변해서 도무지 알기가 어려워요. 알고리즘 붙잡고 실험을 엄청 해야 돼요. 해시태그도 바꿔 보고, 섬네일 디자인도 바꿔 보고, 자막도 넣어 보고, 온갖 걸 다 합니다. 외부 프로그램을 써서 유튜브 검색 빈도수가 높은 검색어를 태그에도 넣어도 보고. 영상과 아무 관련도 없지만 최근 핫한 다른 동영상의 해시태그들을 그냥 갖다가 써본 적도 있어요.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는 해시태그가 있고, 업로드 당사자만 넣는 숨겨진 해시태그가 구분되어 있거든요? 이걸 보여 주게 하는 다른 툴을 많이 씁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검색어 입력하다가 오타를 내는 것도 생각해야 됩니다. 그 오타로 해시태그를 넣는다든지. 자막, 해시태그 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막 같은 경우엔 단순 작업인데 시간은 엄청 많이 들어가죠. 이러한 작업들만 전문적으로 하는 편집자도 따로 있습니다.” (인터뷰이 C)
“유튜브가 계속 일을 하게 만듭니다. 6개월 이상 영상이 안 올라가고 활동을 안 하면 기존에 올린 영상에서 버는 수익 창출도 막더라고요. 뭐든 올려서 활동을 해야 돼요. 공지 사항이라도 올리고, 동영상이든 쇼츠든 뭐든. 활동을 쉬면 안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혼자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하고 다 했는데요 나중에는 지쳐서 결국 이것만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에 맡겼습니다. 3~4인이 하는 업체. 와서 촬영 해주고, 편집해 주고, 업로드도 해줘요. 영상 10편당 200만 원 정도가 듭니다. 일주일에 두세 편씩 영상을 업로드해 주고, 촬영도 직접 와서 해주세요. 그래도 계속 제가 직접 일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집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제 나름의 스크립트, 주제 같은 걸 대략 고민해서 아웃트라인 같이 짜는 준비 작업을 해요.” (인터뷰이 A)
심층 면접에 응한 다섯 명의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커뮤니티에 ‘알고리즘 타는 법을 알려 달라’고 호소하는 수많은 사람이 이 부수 작업(섬네일 제작, 키워드 연관성 분석, 해시태그 달기, 이에 따른 맞춤 콘텐츠 설계 등)들을 가장 지난하고,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이라 증언했다. 프리랜서이면서 방송국의 유튜브 채널 영상 제작 외주 일을 주로 하는 인터뷰이 C는 영상 업로드만 전문적으로 하는 편집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놀라운 증언을 했다. 부수 작업이 워낙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 때문에 이 일만 따로 떼어서 다른 프리랜서에게 외주를 주는 것이다. 베일에 가려진 채 변화무쌍하게 기능을 바꾸는 알고리즘은 건설 현장에서나 볼 법한 ‘외주의 외주’ 고리를 만들어 낸다. 업로드 작업만 담당하는 편집자들은 업로드 시간대 측정, 트렌드 키워드 분석, 다른 영상 채널의 해시태그 분석,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과 유행어 분석 등 사실상 ‘알고리즘 시장 분석가’ 같은 작업을 한다. 애니메이션 업체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외주받아 편집하는 인터뷰이 B, 방송국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제작했던 인터뷰이 E도 똑같은 증언을 한다.
“업로드를 하는 알바가 따로 있어요. 이 친구는 출근해서 종일 하는 일이 업로드입니다. 그런데 업로드만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작업도 해야 하는데, 이게 배워야 하는 게 엄청 많습니다. 업로드했을 때 뭐가 인기가 있다, 언제 올려야 시청률이 높다, 무슨 키워드를 넣어야 한다, 어떤 연령층에 어떤 콘텐츠와 해시태그가 인기가 높다, 이런 걸 구글에서 따로 제공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일일이 다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거예요. 주먹구구식으로.” (인터뷰이 B)
“저도 다년간 일을 했지만 알고리즘을 너무 모르겠어서 답답해요. 시간만 잡아먹고요. 내 영상이 어떻게 조회 수가 올라갔는지 이걸 추측만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들 직접 하다가 지쳐서 나중에는 소셜 마케팅만 따로 하는 업체, 프리랜서에게 또 외주로 맡기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영상이 10분짜리다, 하면 1분짜리 킬링 포인트가 되는 구간을 알려 달라고 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걸 보고 제목도 달아주고, 영상에 들어가는 문구도 적어서 업로드를 대신 해줍니다. 그리고 이걸 우린 다시 받아서 쇼츠 영상 만들고. 쇼츠 자체는 돈이 안 되지만 쇼츠를 많이 만들어야 구독자와 조회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릴스 영상으로 올리고, 쇼츠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서 홍보하고…….” (인터뷰이 E)
인터뷰이 E의 증언을 유심히 보면,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결코 독립적인 환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튜브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영상을 편집 제작한 후 또 이를 갈무리해 짧은 쇼츠(혹은 릴스)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유튜브뿐 아니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등 모든 플랫폼에 널리 퍼뜨려야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모두 각기 다르지만 연결되는 ‘주목’ 추상화의 알고리즘을 운영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피드에 많이 노출되어 주목을 획득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연쇄적으로 주목을 획득하며,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 쇼츠 영상은 복제되어 틱톡의 영상으로 퍼져 나간다. 틱톡에서 인기를 끈 영상의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용되며, 한 플랫폼에 공개된 영상의 키워드는 다른 플랫폼의 영상에서 이용자들에 의해 분석되고, 알고리즘들은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메타데이터를 포착해 광고를 끼워 넣는다. 커뮤니케이션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신경망은 결국 ‘연합 환경’[25]처럼 구성된다.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인 이 연합 환경은 알고리즘과 알고리즘, 플랫폼과 알고리즘들, 그리고 플랫폼-알고리즘과 인간 행위자 사이의 잉여노동이 교차하는 신경망을 만들어 낸다.
한편 크리에이터들은 이용자들이 광고를 감내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도록 영상 작업을 전문가에 준하는 수준으로 가공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10분이 넘어가는 영상, 효과음과 BGM이 들어가지 않은 영상, 매끄러운 몽타주와 영상 내 자막, 특수 효과가 들어가지 않은 영상은 이용자들을 붙잡아 놓을 수 없다. 전문적인 영상 편집, 자막과 소리 삽입, 특수 효과 등의 가공 작업은 필수적인 요소다. 절대 다수의 크리에이터들이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영상 편집 툴을 사용하는 방법, 알고리즘 분석 툴을 학습할 뿐 아니라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경우에 따라서는 발성, 화술과 관련된 교육을 따로 받기도 한다. 안정적인 수입 궤도에 들어선 크리에이터들은 이 수고를 덜기 위해 대부분 영상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편집자를 고용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지난한 자기 착취와 무보수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조연출 역할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네요. 제가 작업을 해주는 업체는 세계적인 어린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이고 구독자가 몇백만이거든요. 그런데도 정규직 편집자나 피디를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었어요. 저는 미술 작가 활동을 하고 있고 아무래도 그쪽으로는 수익이 없다 보니까, 아르바이트처럼 할 수 있는 이 일이 저는 쉽게 느껴졌고, 이런 사람이 많고, 그러니까 업체에서는 정규직 제안도 안 하는 거죠. 주로 예술가나 창작자들이 이런 쪽으로 많이 일해요. 처음 시작할 때 조건은 단순 편집 알바였는데, 사실 하면서 다 해야 됩니다. 편집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기획도 하고, 디자인 구성도 하고, 스토리도 짜고 하면서 제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거죠. 원래 이 일들은 방송사나 프로덕션에선 다 분업을 하는 건데, 이런 유튜브 영상 제작업체에서 일하거나 개인으로 일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알아서 터득하고 알아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외주 주는 쪽 입장에선 이런 고충을 거의 모릅니다. 알아서 다 하니까 그냥 편하게 맡기는 거죠.” (인터뷰이 B)
대다수의 크리에이터들은 알고리즘의 빈도 측정을 감안해 평균적으로 3일 간격으로 하나의 영상을 올리는 걸 최소 조건으로 생각하며, 소셜 미디어 활동을 병행하면서 적절한 구글 트렌드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 일 년 정도의 시간 후에야 유의미한 수입을 내기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업체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업체는 동원할 수 있는 인력풀이 크기 때문에 이 궤도에 좀 더 빨리 오를 수 있다. 개인 유튜브 채널이 성공적으로 수익 궤도에 오르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든다. 1만 5000명 구독자의 개인 영상 채널을 보유한 인터뷰이 D, 그리고 연구자가 관찰한 네 개 커뮤니티 모두에서 대다수 사람이 인터넷 생방송이나 자극적인 콘텐츠(외모 과시, 비속어 등) 없이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단계가 5만 구독자 수 이상이라고 보았다. 또한 ‘어중간한’ 수익을 내는 1~3만 크리에이터들은 물론이고 100~300만 명의 구독자에 달하는 거대 채널을 운영하는 업체도 3인 단위의 비정규직 프리랜서 고용자와 외주 작업에 외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인터뷰이 B는 자신이 의뢰를 받았던 업체가 구독자 400만이 넘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였으며, 회사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5~10분 단위로 재구성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인터뷰이 B는 면접 중 자신이 사측과 맺은 계약서 실물을 연구자에게 제공했는데, 계약서에 따르면 외주 작업은 주로 2개월 단위로 건당 200~300만 원 가격에 이뤄지며, 3~5분 분량의 영상을 열 편가량 제작하는 의뢰가 주를 이뤘다. 또한 회사와 직접 2년 단위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 주 3일 시간제 근무로 시급 1만 2000원을 받았다. 이 금액은 처음에는 1만 원이었는데, 인터뷰이 B가 적극적으로 항의해서 올려받았다고 한다.
인터뷰이 D는 이런 빈틈을 파고들어 어중간한 수익을 내는 1~3만 구독자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싼 가격에 직·간접 광고를 의뢰하는 전문 플랫폼 업체들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광고가 어떤 부조리를 자아내는지에 대한 인터뷰이 D와 E의 생각은 확고했다. 기존에는 업체로부터 연예인 등과 직간접 광고 계약을 맺거나, 광고를 따로 제작하는 등 일대일 계약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익 창출과 분배에 있어 어느 정도 조망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에서 이런 구도는 완전히 탈영토화된다. 다분야의 광고 제작 스튜디오에 외주를 주고 제작한 광고를 수익이 아직 없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에게 할당하는 식으로 ‘광고 외주’를 주는 플랫폼들, 그리고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광고 알고리즘이 매칭시켜 주는 자동 광고에 의해 광고 수익은 미지의 영역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알고리즘이 기존의 외주화를 한 번 더 분해해 ‘외주의 외주’, ‘플랫폼의 플랫폼’이라는 연쇄를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이다.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제품 광고를 대행하는 전문 업체들이 있어요. 애매하게 팔로워 수가 많은 크리에이터들한테 ‘저희와 함께하시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해오죠. 저희가 이러이러한 광고를 갖고 있는데요, 여러분의 채널 성격과 맞는 광고를 선택해서 광고해 주세요. 이들은 광고 대행, 광고 하청 플랫폼이랄까요? 유튜버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플랫폼. 그런데 이게 메리트가 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어요. 많아야 30만 원밖에 못 받거든요? 내가 아직 구독자 ‘일만 따리’이고, 조회 수도 안 나와서 돈은 못 버는 상황인데, 안 할 수가 없죠. 이 광고 하면 내 유튜브도 조회 수 올라가고, 구독자 늘고, 재생 시간도 길어질 테니 ‘윈윈’하는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건데, 옛날에는 파워 블로거들 대상으로 광고 대행하는 방식이 유튜브로 옮겨 와서 아예 플랫폼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요, 내가 이 제품 광고를 해주고 30만 원을 버는 데 이 광고 플랫폼 업체는 얼마를 버는지 저희가 전혀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이 제품 홍보팀한테 제안을 받고 직접 계약을 했으면 광고 수익 얼마당 내가 얼마를 받는다, 이런 걸 알 수가 있는데 이런 광고 플랫폼 업체는 제가 광고 수익을 얼마나 올려주고 제가 몇 프로 가져가는지 클리어하지가 않은 거예요. 제가 봤을 땐 놀아나고 있는 거죠.” (인터뷰이 D)
흥미로운 것은, 영상 제작·영상 편집을 하는 크리에이터들과 편집만 하는 전문 편집자들 모두 영상 제작의 단가에 대해 대부분이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는 것이다. 크리에이터와 편집자 모두 10분짜리 영상을 편집하는 데 5~7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하며, 제작과 편집의 최소 단가가 1만 원이라고 불문율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커뮤니티들에서 지속적으로 구직 글을 관찰한 결과, 전문 편집 작업의 경우 10분 영상 기준 3~5만 원 사이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2024년 대한민국의 최저 임금 시간급은 9860원이다. 모두가 최저 임금을 기준으로 자신의 노동 단가를 책정하고 있다. 최저 임금이 통상적으로 맥도날드나 카페 등에서 직업 훈련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비숙련 단순 작업을 기준으로 책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인터뷰이 C와 E에 따르면, 방송사 외주 유튜브 영상 제작의 경우 10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기획과 촬영, 편집 포함 3일에서 5일이 소요된다. 하루 작업 시간을 여덟 시간이라고 했을 때 최소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전문 편집도 마찬가지다. 10분 영상 편집 시간을 다섯 시간으로 잡는 경우, 크게 여섯 가지 작업이 들어간다. 영상 몽타주, 썸네일 제작, 인트로와 아웃트로, 자막 삽입, 특수 효과(편집자들은 ‘포인트 살리기’라고 표현한다), 음향 효과(BGM, 효과음)이 그것인데 이 모두 전문적인 숙련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문화 산업의 도래 이래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위상이 항상 불안정하다고 믿으며, 그 때문에 자기 착취 또는 구조적인 착취를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스스로 내면화하는 경향을 보인다.[26] 작업의 과정이 자신의 숙련도를 발달시키는 일종의 계발 기회로 여기기 때문에(즉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라 생각하므로) 자신의 노동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여기에 한술 더 떠 광고 수익을 미끼로 크리에이터들이 부수적인 노동과정을 더 투입하도록 만든다. 노동 시간은 늘어나고, 작업은 혼자 떠맡거나 세분화해 외주를 다시 주며, 계약은 개인 대 개인 프리랜스로 한다. 이는 한 산업 부문에서 자동화 비중이 늘어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잉여노동이 반드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마르크스 노동가치론의 관점과 일치한다. 이로 인해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이 창조적인 작업, ‘좋은 일’을 한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인터뷰이 E는 다른 건 다 감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일이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였으면 한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유튜브 프리랜서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 요즘에 과로하면서도 워라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이쪽 사람들은 보면 개인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매일 야근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불안정하죠. 2년, 3년 뒤를 알 수가 없으니까.” (인터뷰이 E)
스스로를 ‘불안정하다’고 여기는 이면에는, 노동 자체가 앞날을 알 수 없으리만치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도사린다.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한 크리에이터들도 3년 이상 활동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았다. 3~7일 주기로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도 긴 작업 시간을 요구하지만,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보고 좋아요 및 구독을 하게끔 하려면 끊임없는 새 콘텐츠 개발 및 기획이 필수적이다. 혼자서 운영하는 채널인 만큼 아이디어 고갈로 고민하거나 지속 운영을 포기하는 크리에이터가 절대 다수이며,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아 재탕을 반복하거나 스스로 재미없는 영상인데 관성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밝힌다.
유튜브 전문 영상 편집자들의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인 요인 때문에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먼저 크리에이터 영상 편집만 전업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방송국의 유튜브 영상 제작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부업이나 파트 타임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국 유튜브 영상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인터뷰이 B, C, E는 대다수의 편집자들이 2년 단위 프리랜스 계약을 맺고 일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외주를 받아 추가로 작업을 한다고 증언했다. 외주의 경우 대부분 작업이 작업 건당, 영상 분당으로 보수가 지급되는 데다 제대로 된 계약서 없이 구두로 합의하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사람들, 심층 면접 대상자들 모두 ‘불안정성’이 크리에이터 노동자들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임을 공감했다.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콘텐츠 아이디어와 활력의 고갈, 그리고 끊임없는 외부 시선 및 평가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편집 중심의 크리에이터들은 극히 불안정한 프리랜서 지위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기술, 탈숙련화의 측면에서 불안을 느낀다. 특히 개인 채널 중심 크리에이터들이 느끼는 불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100만 유튜버와 벼락부자가 된 개인의 신화 등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음영이다. 크리에이터 C는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고도의 정동적 소모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저는 최대한 자극적인 콘텐츠 자제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몸매 과시, 명품 과시, 맛집 자랑 이런 거 있잖아요. 하면 돈은 많이 벌겠죠. 그런데 그만큼 제 살 깎아 먹는 거예요. 개인 채널 운영하시는 크리에이터들이 그런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봐요. 나 자신이 항상 날 것으로 까발려져 있고, 늘 멋있고 완벽한 상태여야 하고, 스트레스는 받는데 호소할 곳은 없고요. 연예인과 달리 유튜버는 뭔가 내 옆에 있는 흔한 사람 같으니까 마구 수위 높은 욕을 하거나 공격하죠. 끊임없이 구독자나 시청자한테 평가를 받는 직업인 거잖아요. 한 번 유튜버가 된 이상 내 삶이 없다, 관에 들어갈 때까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제가 영상을 올려요. 그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 보는지 알 수 있죠. 제가 라이브 방송을 하면 몇 명이 보는지 알 수 있고요. 제가 올리고 활동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숫자적인 것들을 알고리즘이 다 보여 줘요. 이게 오히려 스트레스더라고요. 나의 연애, 나의 일상, 모든 게 알고리즘으로 평가받게 되죠.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365일 매일 행복해요. 이런 걸 다 숨겨 가면서 하니까 병이 와요. 정신이 온전한 사람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돈을 벌면 결국 공허함 때문에 엄한 데 씁니다. 도박을 한다던지 명품을 지른다든지, 남자분들은 여자랑 술 마시는 비싼 술집에 간다던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상받으려고 하는 거죠. 연예인은 그래도 케어해 주는 소속사라는 게 있는데 저 같은 크리에이터들은 그게 없어요. 내 멘탈을 케어해 주거나 법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 보호해 주는 조직도 없죠. 제가 일상 브이로그 위주로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크리에이터로서 이 이상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광고 받으면 돈 많이 벌 것 같죠? 허구한 날 거짓말을 해야 되는데, 내 시청자들을 속여야 되는데 뭐가 즐겁겠어요. 항우울제, 상담 치료는 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아는 거의 모든 분들이 상담 치료 받으면서, 우울증약 먹으면서 버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 바닥에서 가장 흔한 꿈이 뭔지 아세요? 빨리 돈 당겨서 카페를 차린다든가, 술집을 차린다든가, 옷가게를 한다든가 해서 이 세계를 벗어나는 거예요.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항상 뇌리에 각인하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터뷰이 D)
자신의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의 경우 처음에는 의욕 넘치게 유튜브 채널이나 1인 미디어를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은 1년 이상 되는 시점에서 동기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크리에이터들의 노동을 분석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은 영세한 수익을 벌고, 일할 때 투입되는 노력은 크지만 결과물에서 창출되는 보람과 성과는 작아 활동 전후 긍정적 인식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27]
또한 크리에이터D가 증언하듯, 플랫폼-알고리즘 환경은 자신의 모든 활동 내역을 수치화해서 보여 주고, 그것으로 타인과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 생산 활동을 평가하도록 만들어 D의 표현대로라면 ‘멘탈을 극한까지’ 몰고 가도록 만든다. 그 결과 돈을 많이 벌수록 공허함은 더욱 커져서 상담 치료나 항우울제를 복용해야만 하는 역설에 빠지게 되고,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활력이 소모되는 가운데 상당수가 돈을 벌어서 1인 방송 유튜브의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극한의 감정 노동과 기획·제작·리액션 과정에서 소모되는 정동은, 기존의 서비스 산업과 다르게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이 수치화하고 추상화하는 광고 기반 가치 축적의 과정 및 알고리즘 통치성에 의해 더욱 가속화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 있는 인지 활동’이 알고리즘이라는 추상 기계에 의해 ‘죽은 인지 활동’으로 변환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기존의 비물질노동 이론이 월드와이드 웹과 디지털에서 행해지는 노동이 비물질적이라는 주장을 뒤집는다.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은 더욱 물질적이고, 기존의 임노동 관계보다 훨씬 냉혹하며, 정교한 방식으로 인간의 산 인지 활동을 죽은 알고리즘적 수익 시스템 속에 예속시키는 것이다.
영상 편집자들은 아주 짧은 주기로 구직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통해 일을 잡는데, 작업 자체의 안정성도 안정성이지만 작업 과정에서 의뢰인과 빈번하게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더욱 환멸감을 느꼈다. 영상 편집 결과물을 두고 의뢰인과 편집자는 추가 수정 작업, 기본급과 관련된 갈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편집자의 경우 기본급+분당 작업 비용+수정 비용을 사전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갓 진입한 신규 크리에이터나 유연한 수입을 벌기 위해(혹은 일을 배우기 위해) 뛰어든 프리랜서 편집자들은 대부분 정확한 프로토콜 없이 최저 수익을 기준으로 의뢰를 주고받는다. 이런 관계로 이들이 느끼는 불안정성은 그렇지 않아도 알고리즘 때문에 치열한 주목 경쟁에 더해 구직 경쟁의 스트레스를 크게 촉발한다. 10만 구독자 이상을 확보하면서 기반이 잡힌 크리에이터는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직 편집자를 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싼 가격에 편집을 맡기거나 자신이 직접 하는 등 작업의 질적 강도는 높아지는 동시에 숙련 작업자를 구하는 게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인터뷰이 B와 E는 이런 조건 때문에 어느 정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상 제작과 편집 작업에서 탈숙련화가 일어난다고 증언했다. 더 싼 작업비, 더 유연한 외주가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업 노하우를 획득하거나, 하도급으로 제3 자에게 다시 의뢰하고, 제대로 된 계약 없이 미성년자·학생들에게 최저 임금에 준하는 값싼 열정 페이를 주고 일을 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이 편집자 전용 구직 커뮤니티·플랫폼을 통해 일을 구합니다. 이 플랫폼 업체들이 작업 외주를 중개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봐요. 전체 업종의 작업 퀄리티와 단가를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달까요. 손쉽게, 편하게 구인 구직을 하고 되게 싼값에 구직을 올려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답답하죠. 거의 재능 기부 수준이에요. 중고등학생, 학생들이 용돈 벌이나 흥미로 편집 일을 맡는 게 부지기수입니다. 이거 편하게 하는 재밌는 일이야, 너희 꿈을 위해서 하는 거야, 이렇게. 유튜브를 보면 구독자 수, 조회 수, 노출 빈도 이런 걸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헛되게 으쓱한 마음을 심어 주면서, 열정페이 하는 거예요. 저도 고등학교 때 이렇게 영상 편집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2014년~2015년? 얼마 지나니까 구직 커뮤니티에 유튜브 관련 구직 글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제가 한 일은 건당 400~500만 원은 받았어야 하는 일인데 학생이라는 이유로 150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제가 50만 원 더 달라고 졸랐고요. 구직 글 중에는 페이를 ‘상호 협의’로 걸고 이렇게 학생들한테 터무니없이 낮은 돈을 주는 겁니다.” (인터뷰이 E)
기생적 인수분해 : 플랫폼의 플랫폼, 외주의 외주
마지막으로, 영상 채널을 소셜 미디어에 홍보하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노동과정이 있다. 구독과 좋아요로 거머쥔 주목을 더 팽창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된 자아(branded self)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고 전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와 개인 카페 등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작업은 네거티브 피드백과 포지티브 피드백을 동시에 아우른다. 전자는 1인 방송을 병행하면서 수많은 가십, 오해, 사이버 불리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으면 구독자 수가 떨어지는 이유 즉 평판 관리의 차원에서다. 후자는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채널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노출해 구독자 수를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마케팅 차원에 해당한다. 이 작업은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을 위해서는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 중 하나다. 수입이 높은 크리에이터의 경우 이 작업을 종종 외주로 돌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플랫폼의 플랫폼이라 불리는 ‘멀티 채널 네트워크(Multi Channel Network·MCN)’, ‘샌드박스 네트워크’ 등의 중개 업체들이 생겨, 파트너십을 맺은 크리에이터들을 관리하고 콘텐츠 기획을 돕는 일종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영상 편집자나 매니저를 매칭시켜주기도 한다. 이들은 이른바 ‘네트워크’라고 불린다.
네트워크는 셀럽의 반열에 오른 유명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마치 연예인 소속사처럼 보인다. 네트워크는 대형 방송 크리에이터들을 직접 관리하는 모델과, 중소 규모 크리에이터들을 서로 매칭해 주고 수수료를 취득하는 모델을 병행한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외주·하청 전문 매개업이다. 유튜브는 구독자 수가 많은 대형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인증 업체(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채결해 매칭해 준다. 유튜브 파트너십을 맺은 네트워크와 함께할 경우 광고 수익은 스트리머의 몫이 되지만, 대신 네트워크에 매니지먼트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네트워크는 파트너십 로열티를 유튜브에 따로 지불해야 한다. 알고리즘으로 추상화된 주목은 결국 네트워크 효과를 타고 플랫폼의 플랫폼, 외주의 외주 등 기생적 방식으로 인수분해 되는 것이다. ‘플랫폼의 플랫폼’ 혹은 ‘플랫폼의 플랫폼의 플랫폼’ 형식으로 ‘수수료의 수수료’ 이윤을 추구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지대의 지대’가 확산한다는 점에서 월세살이를 하는 세입자가 자신의 집을 온라인 플랫폼에 내놓고 여행자들에게 숙박비를 받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행태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서도 현상된다. 이는 플랫폼-알고리즘 신경망이 건설 현장이나 방송 프로덕션에서 행해지던 탑-다운식 하청과 하도급 모델을 더욱 교묘하게 재배치한 것으로, ‘독점 지대의 네트워크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 형식이 임금에서 지대로 바뀌었을 뿐 빅테크의 부가 메타데이터-알고리즘-플랫폼을 순환하며 수많은 이용자의 잉여노동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알고리즘에 접속된 채 일하는 크리에이터의 노동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비물질과 지능 기계 시대에도 지불되지 않는 인간 작업(그것이 임금이건, 배당금이건 상관없다)인 잉여노동이 자본주의적 부의 원천이라는 엄혹한 명제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28] “한 자본가가 자신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의 착취에 대하여 갖는 특별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비정상적인 초과 노동이나 평균 수준 이하로의 임금 인하, 혹은 사용된 노동의 예외적인 생산성 등에 의해 평균 이윤 이상의 초과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국한된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생산 영역에 가변 자본을 전혀 투입하지 않는 자본가(노동자를 전혀 고용하지 않는 자본가)라 하더라도 결국 지불되지 않은 부불 잉여노동으로부터 이윤을 뽑아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주목을 획득하기 위해 콘텐츠를 알고리즘에 맞춰 가공하는 작업 속에서,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수익 일부를 또 다시 지출해 전문 편집자에게 외주를 맡겨야 한다. 네트워크에 의해 매칭된 편집자들은 최저 시간급으로 평가절하된 자신의 작업에서 다시 수수료를 ‘플랫폼의 플랫폼’에 납부한다. 오늘날 플랫폼-알고리즘에 의해 포획되는 잉여노동과 지대에 의한 축적은 착취/전유/강탈 중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유연하게 변주하는 알고리즘의 힘, 비인간 권력(Inhuman power)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은, 마라찌(Marazzi)가 본 것처럼 “생산 과정이 가장 유연한 방식으로 구조화되게끔 만들고 과거의 모든 경직된 노동의 관습들을 파열시켰다.”[29] 이처럼 “불변 자본은 언어적 기계의 총체로서 사회에 분산되어 있으며, 가변 자본은 재생산, 소비, 생활 방식, 개인과 집단의 상상력 같은 영역에 흩어져 있는”[30] 상황에서 알고리즘과 인지 자동화는 더욱 가속되게 되는데, 획득되는 메타데이터의 규모가 너무나도 커져서 완전히 화려하게 자동화된 알고리즘, 즉 인공지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