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빗물박사 - 빗물에 답이 있다

빗물에 답이 있다
한무영 빗물박사

 
올해 여름은 비가 많이 내릴 예정이다. 아직 우린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아스팔트 사이에 지어진 반지하는 침수를 걱정하고, 맨홀 뚜껑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번 여름도 같은 풍경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재난들을 목격하는 사이, 우리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시원하거나 고마운 존재라는 인식 대신, 번거롭고 위태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심어진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빗물을 증오하는 시대에 살게 된 걸까. 한무영 빗물박사는 빗물을 증오의 존재에서 고마운 존재로, 다시 탈바꿈시키자고 제안한다.

이번 여름은 비가 많이 내릴 예정이다. 올해도 침수와 같은 도시형 재난이 일어날까?

침수는 배탈로 비유할 수 있다. 자신이 허용한 양보다 더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나. 해결책은 간단하다.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방법도 있지만, 애초부터 조금 덜 먹으면 된다. 배탈도 안 나고 다음 날도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침수는 하수도가 허용한 유량보다 더 많은 빗물이 들어올 때 일어난다. 하수도의 용량을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빗물이 조금 덜 들어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빗물을 수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빗물의 양이 많아지는 건 기후 위기 탓인가?

기후 위기로 인해 강수량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지표 형질이 변경된 탓도 있다. 유출계수가 증가하면 내려가는 빗물의 양도 많아진다. 가령 초지였던 곳을 아스팔트나 주차장, 지붕으로 바꾸면 같은 양의 비가 내리더라도 더 많은 양의 빗물이 내려간다.

여름마다 침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원인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맞는 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돈을 투자하니 원인 자체가 해소가 안 되고 있다. 오른발이 가려운데 왼쪽 어깨를 긁고 있는 셈이다.

빗물을 활용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수도권이 쓰는 물은 팔당댐에서 온다. 댐에서 나온 물을 정수해 파이프라인으로 가져오는 식이다. 이 운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하늘에서 자연스레 내리는 빗물을 활용하면 어떨까. 물을 옮기고 운반하는 데 드는 에너지와 탄소를 모두 줄일 수 있다. 또 상수를 공급하고 옮기는 데서만 탄소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물을 처리하고 정수하는 데도 에너지가 쓰이지 않겠나. 빗물은 깨끗하다. 이 빗물을 사용하면 수자원을 처리하는 데서도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은 어떻게 정수하고 관리하나?

빗물이 더럽다는 편견이 있지만 대체 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인간이 빗물에서 처리해야 할 불순물이 많지 않다. 일단 먼지나 꽃가루와 같은, 무거운 입자성 물질은 물을 가만히 냅둬 가라앉히면 된다. 중력에 의해 자연스레 침전된다. 유기물 같은 경우에는 바이오 필름을 활용하면 된다. 미생물은 주변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이 과정에서 자정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런 바이오 필름 원리를 활용해 새똥과 같은 유기물도 걸러낼 수 있다. 침전과 바이오필름은 모두 자연에서 온 해결책, 즉 네이처 베이스드 솔루션(nature based solution)이다. 돈도 덜 들고 훨씬 좋은 물을 받을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빗물이 더 중요할 것 같다.

맞다. 쓰이는 에너지를 줄이고 탄소를 감축시킬 뿐 아니라 기후 위기로 나타나는 문제 대부분을 빗물이 해결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까. 다양해 보이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물 문제, 또 하나는 불 문제다. 모두 빗물이 해결할 수 있다.

물 문제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나?

그렇다. 대표적인 불 문제인 폭염, 산불과 같은 붊 문제는 산에 빗물을 잘 모아 두면 해결할 수 있다. 물모이를 통해 주변 토양에 일정 수준의 습기를 유지함으로써 산불이 나지 않게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물모이는 나무와 돌 등을 이용해 물이 모이도록 만든 1미터 길이의 자연 빗물 저장소다. 소화 용수로도 활용할 수 있고 지하수로 유입돼 계곡이 마르는 것을 막아 준다.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당장 나부터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왜 우리나라는 그동안 빗물을 모을 생각을 못 했을까?

빗물의 존재를 모르거나 빗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하수도법의 탓도 있다. 하수도법에서 빗물은 빠르게 내다 버려야 하는 존재로 묘사돼 있다. 과거에는 좋은 사례를 많이 찾지 못해 변화가 느렸지만, 현재는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빗물을 모으고 관리하기 위해 건물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기존의 건물에서 크게 바꿀 것은 없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홈통을 그대로 두고, 하수도로 들어가기 직전 빗물을 차단해 저금통에 연결하면 된다. 신축 건물에는 빗물 저장조를 만들고, 그쪽으로 빗물을 모을 수 있게끔 홈통만 연결하면 된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물 절약 방법이 있을까?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 효과가 큰 것을 잡아야 한다. 가정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어딜까. 바로 수세식 변기다. 한 번 물을 내릴 때마다 12리터의 물이 낭비된다. 하루에 여덟 번 누른다고 치면 무려 96리터의 물이 쓰이는 것이다. 이 변기를 4리터의 물만 내려오는 초절수 변기로 바꾸기만 해도 하루에 64리터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에서는 2017년, 수세 변기 500개를 교체한 후 10만 톤의 상수 사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 2억 원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

집이 아닌 지자체와 정부 단위에서 시급히 해야할 일은 무엇이라 보나?

물을 절약하고 빗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유츌계수를 변경시킨 사람과 시설, 즉 원인 제공자의 책임 아래 원래와 같이 유출계수를 맞추거나 부담금을 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빗물 저금통을 학교마다 만들어 학생들이 재미있게 빗물 관리를 공부하고 유지, 관리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일인 하루 물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하루 물 사용량은 300리터로 정해져 있다. 이에 목표를 정하고 줄이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가령 2030년까지 230리터로 물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목표다. 지자체별로 달성한 결과에 따라 상을 준다면 올바른 절수 정책, 즉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을 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혜림 에디터


* 2024년 6월 25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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