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NATO)가 돌아왔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라는 한 인물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운명을 되살려낸 것이다. 나토는 다시 각국 외교 정책의 최우선 의제가 되었다. 한때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북유럽 국가들도 이제는 가입을 열망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금껏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는데, 이는 나토 내에서 독일의 기여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태평양에서 새로운 버전의, 제2의 나토를 전개한다는 꿈을 꾸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의 관료들은 인터넷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나토를 계획하고 있다.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동맹에 회의적이었던 진영에서는 트럼프 집권 시절에 CIA나 FBI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토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냉전 시절에 태어난 늙은 보안관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나토는 아직도 무척이나 건재하며 러시아에 대항하는 전쟁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나토가 다시 뜨겁게 주목받으면서, 이 기구의 역사를 둘러싼 논쟁도 새롭게 되살아났다. 나토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당사자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한다. 러시아 정부에 나토는 서방의 자유 진영이 러시아를 굴복시키고 그들의 영향력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묻어 버리려는 오랜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었다. 백악관 입장에서 나토는 원래 서유럽 국가들이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창설되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본을 확장하기 위한 전진 작전의 수단이 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에 있어서 나토는 러시아 탱크들의 진격을 막아주는 신성한 서약이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 있어 나토는 헐값으로 미국산 핵우산을 제공받아 군대가 아닌 사회복지 사업에 예산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나토에 대한 분담금 등의 의무가 너무 과도해서 긴축재정을 시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애초에 펼 수 없었다. 전 세계 다른 지역들이 보기에 나토는 한때 대서양을 중심으로 결성된 방어적인 동맹이었지만, 이후에는 빠르게 변신하면서 더욱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공격적인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토를 두고 벌어지는 이 진부한 논쟁들은 매우 놀랍게도 나토라는 존재 자체를 매우 익숙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들 모두가 유럽이라는 어떤 특정한 개념에 있어서, 또는 서방 세계라는 개념에 있어서 나토를 중심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지만, 정작 나토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NATO라는 네 개의 글자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군사적 동맹을 넘어서는 것이다. 나토는 더 이상 ‘북대서양’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조약’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그들을 ‘기구’라고 부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무슨 자선단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토의 정확한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이 동맹이 최소한 서방에서는 오랜 홍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50년대에 나토는 대형 전시시설과 야외 영화관으로 구성된 이동식 ‘차량 전시회’를 유럽의 깊숙한 지역들로 보내서 나토에 회의적인 시민들에게 이 동맹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제는 나토가 그렇게 고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1980년대 이후로는 나토에 대한 반대 여론도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는 냉전 질서의 유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서방의 군사-정치-경제 체제의 중심에 매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토가 유럽의 지형에서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도 많다.
1. 나토의 탄생
서류상으로 보자면, 나토는 자유주의 제도에 헌신하는 30개 민족국가가 모인 동맹이며, 나토 헌장의 5조에는 어느 회원국이라도 공격받으면 회원국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조건이 걸려있기는 하다. 1949년에 태어난 나토는 스스로를 UN(국제연합)이나 훗날 WTO(세계무역기구)로 거듭나는 GATT(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와 같은, 20세기 중반 무렵에 결성된 다른 국제기구들의 동생 격으로 상정한다. 또, 반세기 이상 유럽의 평화를 유지해 온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나토는 헤이스팅스 이스메이(Hastings Ismay) 초대 사무총장이 내세운 “러시아를 막아내고, 미국과 함께하며, 독일을 억제한다”는 임무를 대체로 잘 수행해오고 있었다.
나토가 주로 군사적인 성격의 동맹이긴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다. 나토의 3대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SACEUR)이었던 알프레드 그룬서(Alfred Gruenther)가 말했던 것처럼 “나토는 일종의 개념”일 수도 있다. 나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업형 도시들은 네덜란드의 브룬섬(Brunssum), 독일의 람슈타인(Ramstein), 가일렌키르헨(Geilenkirchen), 오베람메르가우(Oberammergau), 우에뎀(Uedem), 이탈리아의 아비아노(Aviano), 폴란드의 슈비엔토스죠브(Świętoszów) 등 유럽 대륙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나토의 직원 자녀들을 위한 나토 학교들을 비롯하여 ‘스마트 방어를 위한 스마트 교육’이라는 나토의 군사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나토 아카데미와 각종 센터가 있고, 로마에는 나토방위대학(NDC)이 소재하며, 제트기 연료를 공급하는 나토의 파이프라인이 독일의 지하를 관통하여 매설되어 있다. 또한 나토의 노래책과 나토의 찬가, 빙 크로스비(Bing Crosby)가 부른 〈나토〉라는 제목의 팝 음악도 존재하며, A는 알파(Alpha), B는 브라보(Bravo) 등으로 부르는 나토 자체의 음성문자가 있다. 그리고 나토는 각종 기금과 대학교의 교수직들에 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매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나토 국제모델’을 선발한다. 또한 에르메스는 나토를 기념하여 스카프를 제작하기도 했고, 벨기에에는 핸디캡 36의 초보자들도 가입할 수 있는 나토의 골프 동호회도 있다. 그리고 브뤼셀 소재의 나토 본부에는 영국이 자금을 후원하는 ‘역선전 부대’가 있고, 또한 ‘예술유산허브’라고 불리는 나토 박물관도 있는데, 이곳에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복제품들을 비롯하여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나무 책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토의 서류상 예산은 비교적 검소한 25억 유로 수준이며, 이는 모든 회원국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8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방위비 예산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토는 자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그들의 요식적인 체제를 유지하는데 지출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나토가 ‘합의’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린다고는 하지만, 나토라는 동맹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딱히 비밀이 아니다. 나토의 헌장에 의하면, 회원국이 동맹을 정식으로 탈퇴하기 위해서는 나토의 사무총장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에게 탈퇴의 사유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나토는 정치적인 합의체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문제들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국에게 우선권을 내주고 있다. 브뤼셀에 있는 현대식 신축 건물은 나토의 정치적인 본부에 불과할 뿐이고, 그들의 가장 중요한 군사지휘본부는 미국 버지니아의 노퍽에 자리잡고 있다. 1949년 이후로 나토 연합군의 최고사령관들은 모두 미국의 장성들이 맡아왔다. 나토에는 자체적인 군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토를 실제로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그들의 활동을 조정하는 4000명의 관료다. 나토의 군대는 필요시에 각 회원국의 정부에서 파견한 자원 병력들로 구성되는데, 일반적으로는 미국이 다수를 파견한다. 룩셈부르크와 터키가 한국전쟁에 파병했던 사례나 스페인과 포루트갈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던 것과 같은 나토의 참전 및 교전에 관한 결정은 일반적으로 워싱턴에서 그 계획이 수립된다. 리비아 사태에 나토가 개입했던 사례처럼 주로 유럽인들이 참전하는 전쟁에서도, 그들은 미국의 물류 시스템과 주유 시설, 하드웨어 장비 등에 크게 의존해야만 했다.
나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핵무기이다. 이론적으로는 나토의 3대 핵보유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이 다른 동맹국들 전체를 위하여 핵 방어체제에 있어서 서로 조율하고 있다. 나토가 유럽 대륙에서 핵전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는 대체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약 모스크바에서 브뤼셀을 향해 핵미사일을 날리면, 이에 대한 초기의 대응 결정은 워싱턴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토의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는 복잡한 절차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즉, 나토의 핵전력 담당 그룹이 먼저 만나서 대응 방법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뤄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유럽의 영토에 배치된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하여 워싱턴이 갖고 있는 미국 측의 암호를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들이 벨기에에 있다면 벨기에 국적을 가진 사람이 조종하고 정비를 해야 하며, 독일이나 이탈리아, 네덜란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국민들이 운항과 정비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런 무기 시스템 중에서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언제든 활성화할 수 있을 만큼 상시 고도의 경계 상태로 준비된 것은 없다. 자국이 핵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백악관과 협의하지 않고도 언제든 적들을 제거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독자적으로 자체 핵전력을 보유한 프랑스와 영국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