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역할은 단순히 게임 스코어를 외치는 확성기가 아니다. 신기술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 심판은 지휘자다.
스포츠에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테니스에는 1980년에 사이클롭스(Cyclops) 시스템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코트 전체에 적외선을 투사하여 공의 인-아웃을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2006년에는 고속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호크아이(Hawk-Eye)가 도입됐다.
이에 심판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심판이) 스코어를 외치는 것 말고 실제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폭언과 기행으로 유명해 ‘악동’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테니스 선수 닉 키리오스가 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스포츠에서 기술이 더욱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심판의 역할은 점점 더 지휘자와 비슷해지고 있다. 선수와 볼키드, 선심, 관중은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다. 심판은 경기의 모든 요소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있어야 한다. 선수가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강인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코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판정에 대해 확신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은 공의 경로는 따라잡을 수 있지만 사람의 돌발 행위는 따라잡지 못한다. 코트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심판은 여전히 중요하다. 냉철한, 준비된, 깨어 있는 심판이 필요하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기술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기술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기술과 인간의 각축장이 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코트라는 거울로 비춰 본다.
The Guardian × BOOK JOURNALISM
북저널리즘이 영국 《가디언》과 파트너십을 맺고 〈The Long Read〉를 소개합니다.〈The Long Read〉는 기사 한 편이 단편소설 분량입니다. 깊이 있는 정보 습득이 가능합니다. 내러티브가 풍성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부터 패션과 테크까지 세계적인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통찰을 전달합니다.
원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