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고립된 말리야는 지난 과오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때 인도의 상원 의원을 지냈지만 그의 외교 여권은 이미 취소되었다. 영국 장기 거주자로서 체류 허가를 받기는 했지만 여행증명서 없이는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다. 제트기로 세계를 누비던 라이프 스타일도 더는 누릴 수 없다. 2018년 7월 초 영국 법원은 인도 당국이 부채 회수를 위해 말리야가 소유한 영국 내 부동산에 진입하는 것을 허가했다.
위풍당당하던 시절의 말리야는 새로운 인도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리야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인도의 전통적인 기업가와는 달랐다. 그는 부유했고, 영향력이 있었으며, 그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신흥 기업가라고 해서 모두 말리야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나 IT 기업의 재벌 대부분은 그보다 대담하지 않았다. 말리야는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다수의 인도 신흥 재벌들이 부패 혐의를 받게 되면서, 자신이 부자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집결되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의 구체제는 부패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구체제에서 일반 시민과 기업인 모두는 기본적인 국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뇌물을 숱하게 줘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부패는 2000년대에 발생한 대형 스캔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고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수십 억 상당의 자산을 재계 거물들에게 은밀히 넘겼고, 이러한 일련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사기 시즌(season of scams)’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막대한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는 기업들이 토지를 취득하고, 환경 규제를 우회하고, 사회 기반 시설 계약을 따내게 만들었다. 뉴스 머리기사는 사기성 공공 주택 건설 계획부터 부실한 도로 공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대중이 분노할 만한 새로운 사건들로 가득했다.
인도의 경제 개혁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자유 시장 경제가 정직한 정치 체제로 이어지기를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정실 자본주의가 국민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재계 거물들이 결탁해 빼돌린 돈이 수천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구체제에서 소규모였던 부정부패가 몸집을 엄청나게 불린 것이다.
상당수의 정치인들 역시 놀랄 만큼 부자가 되었다. 재산을 유령 회사나 해외 은행에 조심스럽게 은닉하지 않았다면, 이들도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은 정치권력과 그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높였다. 정당들은 그들의 자리를 보전해 줄 지지자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정치 자금을 모아야 했다. 2014년 인도 총선에서는 약 50억 달러(5조 6000억 원)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유화 시대 이전의 저렴하고 쾌적했던 선거와 비교할 때 엄청나게 늘어난 금액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 돈의 대부분이 미래의 어떤 특혜를 대가로 재계 거물들로부터 불법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인들은 그 돈을 선거 운동에도 쓰지만, 유권자에게 일자리나 현금 같은 선심을 베푸는 데도 쓴다. 라구람 라잔은 인도 중앙은행 총재로 재임하던 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종의 위험한 결합입니다. 공공 서비스가 형편없다고요? 사실 정치인들이 그 결핍을 메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에게서 공공 서비스의 재원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 정치인을 다시 뽑아 줍니다.”
사회적 대립이 극심한 경제는 적당한 수준의 번영은 누리지만 부유한 나라가 되는 데는 실패하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경제와 정치의 결합은 ‘억만장자 라즈’ 시대가 지닌 세 번째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산업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기반 시설 구축에 나섰는데, 대부분 국영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반면 2000년대 중반에 인도가 맞이한 호황기는 민간 재벌에 의해 독점적으로 지배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인들과 대기업들이 경제 발전에 있어 지나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도 신흥 재벌들은 국영 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차입해 거리낌 없이 투자했다. 150년 전 미국이 철도망을 건설한 이래 최대 규모의 민간 자본 투자였다. 하지만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인도의 호황기는 막을 내렸고, 재계 거물들의 오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들의 사업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고, 부채 상환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인도 은행들은 아직도 최소 1500억 달러(168조 원)의 부실 자산을 가지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집권 이후 기업, 은행의 부채 위기와 족벌주의, 이를 유발한 슈퍼리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때로는 허사에 그쳤지만 이런 전개를 지켜보면서 누군가는 인도 재벌의 힘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인도의 초부유층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억만장자의 수도 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인도의 빈부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인도가 중국식의 두 자리 수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빠르게 벌어질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도는 이미 오래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순위에 이름을 올렸어야 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빈부 격차가 심한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해지는 것으로 이런 흐름을 뒤집으려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가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인도의 미래를 언급하면서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극심한 불평등의 주된 위험은 이 문제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풀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리란 점입니다. 그건 아마 매우 끔찍한 방향일 겁니다.”
인도는 이제 발전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처럼 빈곤을 벗어나 중진국의 지위를 완전히 얻은 아시아 국가들을 따르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남미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대립이 극심한 경제 구조를 지닌 국가는 적당한 수준의 번영은 누려도 부유한 국가가 되는 데는 실패하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분적으로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최상위층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었기 때문에 평등을 유지하면서 번영할 수 있었다. 인도가 두 모델 중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부정부패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전통적인 족벌주의 시스템은 정치적 특혜와 무위험 은행 대출과 관련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은 기껏해야 절반의 승리다. 토지 구입부터 지방 자치 단체의 계약에 이르기까지 공공 생활의 곳곳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자행되고 있고, 주와 시 단위의 지방 정부도 예전과 다름없이 부패해 있다. 인도가 아시아에서 뇌물이 가장 만연한 국가라는 조사도 있다. 경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말한다. “극빈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국가라면 세 가지 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조세 제도, 법, 치안입니다.” 인도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 여전히 고질적인 부패를 겪고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은밀한 정치 자금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업과 은행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새로운 파산법과 은행 자본 재편을 포함한 몇 가지 주요 정책을 도입했지만, 공공 대출 기관 민영화 같은 급진적인 정책은 펴지 않고 있다.
인도 정부의 이런 노력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역사에서 빈번히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 이전에도 족벌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 고속 성장을 경험하고 그 시기에 발생한 문제에 대응한 국가들이 있었다. 영국은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닥쳤을 때 이미 겪은 일이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나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더욱 유사한 사례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고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 사이에 미국이 맞이한 ‘도금 시대(Gilded Age)’
[5]다. 한 역사가는 이때를 ‘위대한 기업, 무신경한 재벌, 타산적인 정치 보스’의 시대라 칭하기도 했다.
인도의 도금 시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산업화 초기는 정치적, 경제적 격변기라는 점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가 한때 ‘국가의 미래에 대한 로망스’라고 불렀던 것처럼, 이 시기에는 국가 성장에 힘을 불어넣고자 하는 국민들의 희망에 호소할 수 있다.
인도는 미국이 19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내내 경제력을 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도가 인구수에서 이미 중국을 넘어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되었다고 본다. 또 누군가는 10~20년 내로 경제 패권이 인도로 넘어가리라 전망한다. 어떤 경우든 인도가 경제 모델을 제대로 갖추는 데 인류 상당수의 운명이 달려 있다. 서구에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인도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과도기에 인도의 ‘억만장자 라즈’는 통과 의례가 되어야 한다. 결코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시아의 세기’ 후반부를 이끌어 나가려는 인도의 야망, 그리고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향한 세계인들의 희망은 인도가 이 과도기를 잘 헤쳐 나가는 데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