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7일 사회
‘피해자다움’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잇따르고 있다. TBS교통방송의 진행자 박지희 아나운서는 14일 공개된 팟캐스트에 출연해 “4년 동안 대체 뭐 하다가 이제 와서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 너무 궁금하다”고 해 비판을 받고 있다.

핵심 요약: 일부 네티즌들은 피해자의 ‘신상 털기’에 나섰다. 이들은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즉각 신고하지 않은 것에 ‘의도’를 부여한다. 경찰은 온·오프라인상의 2차 가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선택적 피해자 중심주의: 이번 사건에서 정부와 여당은 일관되게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피해자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그러나 4월 서울시청 비서실 직원이 동료 직원 성폭행 의혹으로 고소당했을 때 서울시는 고소한 직원을 ‘피해자’로 지칭했다. 5월 청와대 디지털 소통 센터장은 15년간 성폭행을 한 친부를 엄벌해 달라는 내용의 국민 청원 게시물을 언급하면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기 전에 피해자란 용어를 쓴 것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홍익표 의원 등 민주당 일부 의원은 ‘피해자’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은 정부 여당이 그동안 강조한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여성계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이 있다면, 객관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가 인정된다고 본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형사 절차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범죄자를 확정 판결 전에 유죄 추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글을 남겼다.
  • 여성가족부는 이번 사건 고소인을 ‘피해자’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현재 고소인이 여가부가 지원하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을 통해 보호 받고 있고, 관련 법령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피해자’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피해자다움’은 없다: 김지은, 서지현 등 수많은 피해자들은 ‘왜 거부하지 않았냐, 왜 바로 알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대화에서 이모티콘을 썼다고 ‘피해자’임을 부정당했다. 안희정 측은 김지은이 안희정에게 ^^, ㅠㅠ, ㅎ, 넹 등의 ‘애교 섞인’ 표현을 썼다며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은 없다며 안희정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안희정 측의 주장이 피해자를 ‘정형화’하는 편협한 관점이라고 봤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 ‘피해자다움’은 피해자에게 ‘완전무결’을 강요하고, 피해자 스스로 모든 걸 바쳐 피해를 입증하게 만든다. 진혜원 대구지검 검사는 박 전 시장과 팔짱 낀 사진을 올리고 ‘나도 성추행범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YTN 이동형 작가는 “피고소인은 인생이 끝났는데 (고소인은) 숨어서 뭐하는 것이냐”고 발언했다. 모두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명백한 2차 가해다.

N차 가해를 막기 위한 연대: 피고소인 사망으로 법적 판단조차 받을 수 없는 피해자는 2차 가해 앞에 더욱 무력해진다. 인터넷에는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피해자 측은 “2차 가해에 대한 침묵도 2차 가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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