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인 나조차도”: 고 조비오 신부는 1989년 M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처음으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했다. 전두환 씨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980년 5월, 비상계엄령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다는 내용이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헬기 사격 목격담 등을
증언했다.
- 전 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 《혼돈의 시대》에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며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조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사자(死者) 명예 훼손 혐의로 전 씨를 형사 고소했다.
- 사자 명예 훼손죄는 명예 훼손죄와 달리 해당 내용이 ‘사실’이면 아무리 비판적이라고 해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판의 쟁점은 헬기 사격이 실제 있었는지와 전 씨가 이를 알면서도 고인을 비난했는지 여부였다.
“단 한마디 사과도 없어”: 이번 1심 판결은 검찰이 전 씨를 기소한 지 2년 6개월 만에
나왔다. 재판부는 전 씨를 향해 “혐의를 부인하면서 성찰과 단 한마디 사과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 재판부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측 증인 36명의 진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탄흔 감정 결과,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 등을 종합했다. 왜 유죄로 판단했는지 108쪽에 이르는 판결문에 담았다.
- 전 씨에 대해 “국군이 국민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했다는 쟁점을 인식하고도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지적했다. “5·18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고통받아 온 많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역사를 인정한 판결: 5·18 단체 측은 “1980년 5월 21일 헬기 사격과 5월 27일 헬기 사격 모두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됐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형이 아닌 집행 유예를 선고한 양형에는 아쉬움을 보였다.
-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한 검찰은 판결 이유 등을 분석해 항소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자 명예 훼손죄의 법정형 기준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 전 씨는 재판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광주지법을 떠날 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광주로 가려고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출발할 때 “대국민 사과하라”고 집 앞에 찾아와 외치는 사람들에게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고함쳤다.
갈 길 먼 991억 원: 전 씨의 ‘역사적 책임’에 항상 따르는 것이 ‘추징금 미납 버티기’다. 전 씨는 1997년 뇌물 수수와 군 형법상 반란 혐의로 기소돼 무기 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청구받았다. 공직에 몸담았을 때 부정 축재한 재산을 국가가 추징하는데, 전 씨는 991억 원을 더 내야 한다. 납부를 미루면서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도 했다. 전 씨는 서울 연희동 사저를 압류하려는 검찰을 상대로 법 집행이 부당하다며 다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