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없는 김정은 재판: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이 우리나라 법정에서 ‘피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 소송 원고인 두 사람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됐다. 정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3년부터 3년간 평안남도의 탄광에서 일했다. 이 기간 못 받은 임금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1인당 1억 6800만 원을 김정은에게 청구했다.
- 대한민국에 사무실도, 집도 없는 김정은에게 소장을 어떻게 전달했을까. 법원은 소장을 ‘공시 송달’했다. 상대방 주소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소송 사실을 법원 게시판 등에 알리고 두 달이 지나면 서류가 전달됐다고 보고 소송을 진행하는 제도다.
- 북한은 우리 헌법에서 국가가 아니다. 법원은 북한을 지방 정부와 유사한 정치적 단체인 비법인 사단으로 봤다. 따라서 우리 법정이 단체의 대표자 격인 김정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비법인 사단은 인적, 물적 실체를 갖추고 있지만 법인 설립 허가를 받지 않은 단체다. 교회나 사찰, 동창회가 포함된다.
진짜 배상 받을 수 있나: 민사 소송에서 이긴 원고는 일반적으로 피고의 급여나 재산을 압류해 위자료를 받는다. 김정은과 북한의 재산에 대해서도 가능할까.
- 한국에 북한 소유라고 볼 만한 자산이 있다. 국내 방송사들이 조선중앙TV 콘텐츠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저작권료다. 그런데 대북 제재로 송금이 어려워지면서, 2009년부터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 왔다. 현재 공탁금의 규모는 2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인단은 이 공탁금에 대한 강제 집행을 계획하고 있다.
- 해외에서는 앞서 비슷한 재판이 진행됐다.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은 미국 법원에 김정은과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우리 돈 약 58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뒤 세계 곳곳에 은닉된 북한 재산을 압류하고 있다.
- 지난달 25일에는 6·25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처음으로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로 인권을 침해당했으며, 6·25 전쟁 이후에도 북한이 납북자들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절하면서 계속 피해를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망: 이번 판결로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을 받아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소송도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향후 비슷한 소송과 판결이 이어지면서 압박이 커질 경우, 삼권 분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북한이 우리 정부의 반응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