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멘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김종인 위원장이 멘토 역할을 했던 거물 정치인들이다. 소속 정당이 모두 다른 대통령 두 사람과 대선 후보 한 사람의 스승이었던 그에게는 ‘철새’라는 비판과 ‘선거의 왕’이라는 찬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는 김종인 위원장의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차였던 2013년 “경제 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해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밝히고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결별했다.
- 2016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대표의 권유를 받고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해 비례대표 2순위로 입후보했다. 이해찬 현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킬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으로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당의 경제 민주화 의지를 비판하며 입당 1년 2개월 만인 2017년 3월 탈당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상실했다.
- 2017년 5월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맡아 안철수 후보를 도왔다. 두 사람은 2011년에도 멘토-멘티 관계로 알려졌으나 안철수 대표 측이 부인하면서 결별했던 적이 있다.
정치 인생 40년: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 이력은 올해 햇수로 40년을 맞는다. 비례대표로만 다섯 차례나 의원직에 올랐다. 1981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11대 국회에 입성한 이래, 12대, 14대, 17대, 20대 국회에서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 김 위원장은 단 한 차례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여당 민정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붙어 패했다. 김 위원장은 3선에 도전하는 49세의 중견 정치인이었고, 이 대표는 당시 서른여섯의 청년 정치인이었다.
- 박정희 정부 시절, 의료 보험 제도 도입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 수석을 지냈다.
- 노태우 정부 경제 수석 시절 동화은행에서 2억 1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93년 구속됐다가 집행 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두 번의 승리, 두 번의 실패: 김종인 위원장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이렇게
썼다.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다.” 그의 두 번의 선택은 승리였으나 실패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