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없는 은곰: 베를린 영화제는 최우수 주연상인 은곰상을 ‘젠더 중립적’인 방식으로 시상할 예정이다.
- 베를린 영화제는 매년 2월 중순에 약 10일간에 걸쳐 열리고, 전 세계에서 초청된 400여 편의 장·단편 영화가 상영된다. 최고상이자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 은곰상인 여우 주연상·남우 주연상·각본상 등을 시상해왔다. 그동안 성별 구분이 있었던 은곰상 연기 부문을 최우수 주연상, 최우수 조연상으로 바꾼다.
- 올해 70주년을 맞은 베를린 영화제는 성 평등과 다양성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초청된 작품 중 여성 감독 비율이 40퍼센트에 이른다. 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집행 위원장을 임명했다. 베를린 영화제는 46페이지짜리 <2020 젠더 평가 보고서>도 공개했다. 지난해 초청된 모든 영화와 게스트, 스태프 성비를 분석한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제에 참가했던 스태프의 성비는 50:50이다.
젠더리스 인 할리우드: 시상식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려는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 2008년 영국의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즈(National Television Awards)는 처음으로 남녀 연기상 구분을 없앴다. 2017년에는 미국 MTV 무비·TV 어워즈(MTV Movie & TV Awards)가 젠더리스 연기상을 도입했다. 당시 엠마 왓슨이 영화 〈미녀와 야수〉로 영화 부문 최고 연기상을 받았다. 엠마 왓슨은 “연기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 대입하는 능력이고, 이 능력은 두 개의 성별로 나눌 수 없다. 공감과 상상력은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에이미 도일 MTV 국장도 “좋은 연기는, 성별과 관계없이 좋은 연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국 대중음악 시상식 브릿 어워즈(Brit Awards)도 내년부터 성별 구분을 없애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일각에서는 성별 구분을 없애면 결국 남성들이 더 많이 수상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BBC》는 젠더리스 수상을 도입한 시상식의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MTV 뮤직 어워즈가 성별 구분 없는 최고의 아티스트상을 도입한 이후 수상자는 남성인 에드 시런, 여성인 카밀라 카베요와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즈에서도 최고의 드라마 연기상을 남녀가 공평하게 가져갔다.
여성은 수식어를 원하지 않는다: ‘배우’라는 일반적인 호칭에 한 글자만 보태면 여배우라는 예외적인 존재가 된다. 노벨상, 퓰리처상, 맨부커상에는 성별 구분이 없다. 감독상, 촬영상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말하는 젠더 논바이너리(gender non-binary) 배우 아시아 케이트 딜런은 배우의 영역에 남아 있는 성별 구분이 “눈, 머리카락, 피부 색깔로 구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불필요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이다.